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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규제 필요성 입증 못하면 자동 폐지되도록 해야”

입력 | 2019-01-16 03:00:00

[文대통령, 기업인과의 대화]기업인들, 정부에 정책 건의 쏟아내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포용국가’ ‘소득주도’ 등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설파하는 대신 현장 의견을 듣는 데 집중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기업 총수와 중견기업 대표들은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며, 규제개혁부터 혁신성장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과 정부 부처 장관들은 기업인들의 건의 사항을 청취하고 곧바로 답변에 나섰다. 토론은 예정 시간인 65분을 넘겨 2시간가량 이어졌다.

○ 최태원 회장 “혁신 성장을 위한 기본 전제는 실패에 대한 용납”

첫 질의자로 나선 KT 황창규 회장은 “2018년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조기에 진압된 것은 정부가 KT에 개인정보인 로밍 데이터를 쓸 수 있게 허락했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 인류에게 공헌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보보호 규제를 풀어주셨으면 한다”고 건의했다. 이에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데이터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산업 측면에 연결할 것이냐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 발표한 부분들이 있다”면서도 “(기업과) 더욱 긴밀하게 잘 준비해서 조기에 성과를 내도록 지원을 잘하겠다”고 답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장인 퍼시스 이종태 회장은 “수십 년간 유지된 규제는 폐지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기업이 규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호소하고 입증하는 현재의 방식보다는 공무원이 규제를 왜 유지해야 하는지 입증케 하고, 입증에 실패하면 자동 폐지토록 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 기업 자율, 시장 감시, 정부 감독에 맡겨도 될 사전 규제의 일괄 정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회장은 과거 교육개혁 때 교육부가 소관 행정명령을 일괄 없애고, 필요성을 입증한 것만 남기는 방법을 적용해 규제 5332건 중 절반가량인 2639건을 폐지 또는 완화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입증 책임을 공직자가 갖도록 하자는 것도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도 “규제혁신을 위해 법률의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우리가 입법 절차상 시간이 걸리겠지만 행정명령으로 이뤄지는 규제 같은 경우는 우리 정부가 보다 선도적으로 노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 부분에 대해 좀 집중적으로 노력해 달라”고 참석한 정부 관계자들에게 지시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혁신 성장을 위한 기본 전제는 실패에 대한 용납”이라며 “혁신을 할 때는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 (정부 정책의) 기본적인 철학적 배경이 ‘실패를 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혁신성장이 산업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코스트(비용)의 문제가 있다”면서 “전반으로 실패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낮아지도록 하는 환경을 정부와 사회, 기업이 함께 만들어야 혁신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또 “혁신성장은 대한민국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전체의 경쟁이고, 전 세계 최고의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하면서) 또 내부에서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는 백업(뒷받침)이 없다면, 혁신성장에 의해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되는 열매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사회적 기업 육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잠재력도 언급하면서 관련법들이 진행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솔직히 지난번에 이 말씀을 1년, 햇수로는 거의 2년 전에 한 번 말씀 드린 적이 있다”며 “어떻게 하실 것인지 구상을 저희가 알고 갔으면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실패를 통한 축적이 이뤄져야 혁신이 가능하다”고 공감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가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20조 원 이상 확보했다고 말씀 드렸는데, 대체로 단기 성과 중심인 만큼 실패할 수도 있는 장기 과제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R&D 자금을 배분하겠다”고 했다.

○ 이재용 부회장, “일자리 3년간 4만 명’은 꼭 지키겠다”

기업들은 고용 창출을 재차 약속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제 정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시장이 축소됐다고 하는 것은 핑계일 수 있다”면서 “설비 기술 투자 등에 노력해 내년에 이런 자리가 마련되면 당당하게 성과를 얘기하겠다”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 1등 대기업으로서 작년에 숙제라고 말씀드린 ‘일자리 3년간 4만 명’은 꼭 지키겠다”고 말한 뒤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고 그것이 기업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두 아이 아버지로서 아이들 커가는 것을 보며 젊은이들의 고민이 새롭게 다가온다. 소중한 아들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SM그룹의 우오현 회장은 “해운업이 현재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는 것같이 어렵다”며 자금 조달 방안 등 관련 지원을 요청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부채 비율이 높아지지 않고 자금 조달이 가능한 방법은 장기후순위 채권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방식이 있다”고 조언했다.

최저임금의 인상 폭 조절이나, 52시간 근로제에 따른 노동시간 단축의 유연한 운용에 대한 요청도 나왔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정책을 보완해 나갈 것”이라며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선을 위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사회 지표도 중요하지만 고용 상황과 기업 상황 등 경제 지표도 균형 있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기업들의 과제는 우선 기업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라가 부강하게 되는 지름길”이라며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에 당부 드리고 싶다. 다시 한 번 투자와 혁신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기업 활력을 제고하고 장애가 되는 규제를 혁파하는 데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자리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관석 jks@donga.com·황인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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