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하나의 자기완결적인 언어체계로서 이론가가 처한 사회적 배경에 따라 특정한 정치적 관점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즉 E.H 카가 ‘20년의 위기(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에서 지적했듯이 이론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이론의 정치성은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 국제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현실적 문제이다. 이론 가운데서도 국제정치이론은 국제정치현실을 설명하는 틀이다. 이론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흐름이 가지는 뼈대를 발견하고 일관된 태도로 현실을 인식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곧바로 현실의 국제정치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이어지기에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이론이 갖는 역할은 여전히 막중하다.
●현대 국제정치학의 분류와 핵심 요소들
●한국적 국제정치이론 정립의 3단계 방법론
첫 번째로 생소한 국제정치이론의 영역이 많이 개방되어 일반 대중이 국제정치이론을 쉽고 간단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논쟁과 개별 외교사안에 대한 대중의 논의는 매우 활발한 편이지만, 전체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인 국제정치이론을 교양 수준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기에 이에 대한 논쟁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인문학 붐이 불어 쉽게 접할 수 있는 양질의 인문학 서적들이 많이 출간되었는데 이를 참고하여 국제정치 현실을 큰 틀에서 조망하는 국제정치이론을 간단하고 쉽게 설명하는 교양 저술들이 많이 나온다면 한국적 국제정치이론 정립의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구한말 ‘정립론’의 현대적 변용 가능성
마지막으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빼는 ‘사단취장’의 자세로 기존 국제정치이론을 정리한 후 한국의 특수한 경험과 관념을 더하여 한국적 국제정치이론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19세기말 청일전쟁 이후 중화질서가 무너지던 무렵 한국에서 자생했던 ‘정립론’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것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정립론’은 큰 틀에서 대외적으로 아시아가 연대해야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한중일 삼국 간의 세력균형을 이루어 ‘세 개의 다리가 안정적으로 솥을 받쳐야 함’을 주장했던 이론이다. 당시 독립신문에는 일본의 동양평화론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정립론’의 원형이 드러나는 기사가 여러 번 실렸다.
정립론에 주목하는 이유는 정립론이 여러 현대 국제정치이론의 접점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합의된 세력균형을 강조하는 모습에서는 고전현실주의자인 모겐소의 처방을, 대외적으로 지역의 연대를 주장하는 모습에서는 자유주의의 경제협력과 국제사회학파의 ‘국제사회’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정립론은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을 통해 강대국 틈바구니 속 한국의 안보를 확보하면서도 공동의 이익, 가치 하의 협력을 통해 해외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의 경제를 살리는 외교정책을 뒷받침할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장성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16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각 국제정치이론 상세 설명
:자유주의: 현대 자유주의의 뿌리는 크게 민주평화론, 시장평화론, 제도주의로 나뉜다. 먼저 마이클 도일은 칸트의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절차적, 규범적 기제에 의해 전쟁하지 않음을 주장했다. 아담 스미스를 시조로 하는 시장평화론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게 골자이다. 제도주의의 대표 학자로는 로버트 코헤인을 들 수 있는데 그는 국제정치에서 제도를 통해 ‘정보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면 국제협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한편 코헤인과 나이는 앞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협력을 종합한 ‘복합상호의존론’를 정립했고 이는 오늘날 신자유주의로 잘 알려져 있다.
:구성주의: 알렉산더 웬트는 ‘국제정치의 사회적 이론(Social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을 통해 국제정치의 문화와 국가의 정체성이 구성되는 면에 주목해야 함을 주장했다. 웬트에 따르면 국제정치의 무정부 상태에서도 홉스적, 로크적, 루소적 등 서로 다른 문화의 구성이 가능하고, 국가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각 국가의 정체성을 고려하여 국제정치의 양상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사회학: 국제정치의 사회구조와 개념의 역사성을 강조하여 국제정치의 거시적 이행이 갖는 동태적 흐름을 포착하고자 한다. 근대 이행을 분석하면서 역사사회학은 ‘주권’ 개념이 대외적 독립성, 내정불간섭, 주권평등 개념 등을 순차적으로 포섭하여 완성되었음을 강조한다. 또 역사사회학자 만(Mann)은 이념, 군사, 경제, 정치 네 개 층위의 변화를 종합한 IEMP모델을 활용하여 국제정치의 거시 이행을 설명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탈근대 이행을 분석하는 데에도 유용한 부분이 있다.
:마르크스학파: 남미학자들에 의해 제창된 종속이론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 주변부에 대한 중심부의 착취 구조를 고발한다. 임마누엘 월러슈타인은 이를 발전시켜 ‘세계체제론(The Modern World System Ⅰ,Ⅱ,Ⅲ)’을 통해 근대 국제정치는 단일한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 이어지는 착취의 사슬 구조를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람시주의는 마르크시즘의 개념 중 상부구조에 주목하여 전 세계적 착취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지배계급의 문화적, 이념적 헤게모니를 분석 및 해체하고자 하였다.
:탈근대이론: 푸코와 데리다는 공통적으로 사회적, 역사적으로 형성된 ‘지식의 조건들’에 의해 단일한 진리 개념이 언어의 형태로 고착화되는 모습을 비판했다. 제임스 덜 데리안과 리차드 애슐리는 ‘담론의 해체’를 통해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계보학’을 강조한 한편, 국제정치를 공감과 감정이입 영역의 정치로 보는 감정적 전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