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예술도 늘 진지할 순 없다. 때로는 농담이 진담 못지않게 값질 때가 있다. 농담으로 한 말이 명언이 되거나 장난으로 만든 작품이 명작이 되기도 한다. 스위스 초현실주의 작가 메레 오펜하임이 만든 이 기괴한 모피 찻잔은 파블로 피카소와 주고받은 농담에서 탄생했다.
1936년 어느 날. 오펜하임은 파리의 한 카페에서 피카소와 그의 새 연인 도라 마르를 만났다. 당시 오펜하임은 파리 생활 4년차에 접어든 23세 신진 여성 작가였다. 18세에 파리 유학을 온 그는 보수적인 미술학교보다 카페에서 작가들을 만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름답고 독립적이고 유머감각까지 뛰어난 오펜하임은 파리 아방가르드 작가들을 금방 매료시켰다. 피카소뿐 아니라 앙드레 브레통, 막스 에른스트, 알베르토 자코메티, 마르셀 뒤샹, 만 레이 등과 어울렸고 그들의 뮤즈가 됐다.
카페에서 피카소는 그가 찬 ‘털로 덮인 팔찌’에 감탄하며 “뭐든지 털로 덮을 수 있다”고 농을 건넸다. 오펜하임은 “이 찻잔과 받침도 말이죠?” 맞받아쳤다. 마신던 차가 식자 그는 한술 더 떠 “모피 한잔 더”라고 주문했다. 그리곤 뭔가 떠오른 듯 백화점으로 달려가 찻잔 세트와 숟가락을 사서 중국산 영양 털로 그것들을 완전히 감쌌다.
이 작품은 그해 파리와 런던 전시를 거쳐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첫 초현실주의 전시에 초대되며 화제를 낳았다. 오펜하임 역시 미술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같은 해 MoMA가 이 작품을 구입하자 작가는 ‘모마의 영부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명작이자 MoMA가 구입한 최초의 여성 작가 작품이 사실은 농담과 장난에서 태어난 초기작이었던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