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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미술시간]〈42〉장난이 낳은 명작

입력 | 2019-01-17 03:00:00


메레 오펜하임, ‘오브제’ 1936.

인생도 예술도 늘 진지할 순 없다. 때로는 농담이 진담 못지않게 값질 때가 있다. 농담으로 한 말이 명언이 되거나 장난으로 만든 작품이 명작이 되기도 한다. 스위스 초현실주의 작가 메레 오펜하임이 만든 이 기괴한 모피 찻잔은 파블로 피카소와 주고받은 농담에서 탄생했다.

1936년 어느 날. 오펜하임은 파리의 한 카페에서 피카소와 그의 새 연인 도라 마르를 만났다. 당시 오펜하임은 파리 생활 4년 차에 접어든 23세 신진 여성 작가였다. 18세에 파리 유학을 온 그는 보수적인 미술학교보다 카페에서 작가들을 만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름답고 독립적이고 유머감각까지 뛰어난 오펜하임은 파리 아방가르드 작가들을 금방 매료시켰다. 피카소뿐 아니라 앙드레 브르통, 막스 에른스트, 알베르토 자코메티, 마르셀 뒤샹, 만 레이 등과 어울렸고 그들의 뮤즈가 됐다.

카페에서 피카소는 그가 찬 ‘털로 덮인 팔찌’에 감탄하며 “뭐든지 털로 덮을 수 있다”고 농을 건넸다. 오펜하임은 “이 찻잔과 받침도 말이죠?” 맞받아쳤다. 마시던 차가 식자 그는 한술 더 떠 “모피 한 잔 더”라고 주문했다. 그러곤 뭔가 떠오른 듯 백화점으로 달려가 찻잔 세트와 숟가락을 사서 중국산 영양 털로 그것들을 완전히 감쌌다.

단지 재질만 바꿨을 뿐인데 일상의 물건이 순식간에 낯선 오브제가 됐다. 찻잔이 모피를 입자 원래 기능은 완전히 사라졌고 우리의 무의식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로 재탄생했다.

이 작품은 그해 파리와 런던 전시를 거쳐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첫 초현실주의 전시에 초대되며 화제를 낳았다. 오펜하임 역시 미술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같은 해 MoMA가 이 작품을 구입하자 작가는 ‘모마의 영부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명작이자 MoMA가 구입한 최초의 여성 작가 작품이 사실은 농담과 장난에서 태어난 초기작이었던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