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전문연구요원 존속 요구, 특혜 바라는 집단이기주의 아냐 현대戰서 단순 병력 숫자는 무의미… 국방 위해 반드시 총 들 필요 없어 이공계 인력, 연구실에 남기는 게 인적자원 효율적 활용에 바람직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과학기술계에서 이 속담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슈가 전문연구요원제도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어 아시아경기 대표팀 선발 논란, 병역특례요원 복무 중이던 국가대표 선수의 봉사활동 조작 사태까지 터지며 그 어느 때보다 병역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과학기술계도 2016년 5월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제도 전격 폐지 방침 발표로 대체복무 논란을 한바탕 치른 적이 있다.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연혁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의무복무기간을 5년으로 해 한국과학기술원 및 방위산업체 종사자들에게 도입한 특례보충역이 그 전신이다. 이듬해 기간사업체 종사자가 추가되고 1981년 자연계 대학과 기업 부설 연구소로 확대됐다. 1989년 유사 특례 분야 통폐합으로 연구요원과 기능요원이 분리됐고, 1993년 이 제도가 병역법에 흡수되면서 각각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현재 복무기간은 36개월로 육군의 21개월에 비해 3분의 1 정도 길다. 2020년 11월 입대자부터 육군은 18개월로 줄어든다니 그 즈음에는 전문연구요원 복무기간이 두 배가 된다.
당시 온라인 댓글 중에는 “세종대왕님은 노비를 과학자로 만들었는데 ‘헬조선’은 과학자를 노비로 만든다”면서 중이 제 머리를 못 깎기에 (전문연구요원제도의 대표적 수혜자인) “카이스트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계정으로 쓴 글도 있다.
전문연구요원제도 존속에 대한 이 같은 목소리는 병역 의무의 형평성을 간과한 과학기술계의 집단이기주의인가? 아니면 지난 수십 년간 국가산업 기여를 미명으로 유학도 가고 다른 분야에서 돈도 더 벌 수 있었던 인재들을 이공계에 끌어들였지만 이제는 이공계도 변변치 않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전문연구요원제도를 둘러싼 이슈는 복잡하고 미묘해서 이 지면에서 자세히 다루기가 힘들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두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스님은 자기 머리보다 남의 머리를 더 잘 깎기 때문이다. 병역법 제2조는 전문연구요원을 ‘학문과 기술의 연구를 위해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되어 해당 전문 분야의 연구 업무’에 복무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군복무자로서 전문연구요원은 말하자면 자기 머리를 깎는 일(총을 드는 것)보다 남의 머리(연구개발)를 더 잘 깎는 군인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스님이 자기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걸프전 당시 100만 대군을 거느린 이라크는 항공 전력과 첨단 무기를 앞세운 연합군에 100시간 만에 초토화됐다. 현대전에서 단순한 병력 숫자는 무의미하다. 총만 들 필요가 없을뿐더러 총만 열심히 들어서 국방과 안보가 보장되는 게 아니다.
이공계 대학원생이라고 아무나 전문연구요원을 하는 게 아니다. 잡음이 있지만 모종의 선발 절차를 거쳐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된다. 수만 명의 이공계 대학원생 중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되는 규모는 1000명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인적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과연 이들을 연구실 밖으로 불러내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오히려 이공계만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재들을 위해 기회를 더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