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16일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 대책 후속 조치’ 발표 후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지난주 한 방송의 보도 이전까지 국민들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직전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코치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지난해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대한 특정감사까지 실시한 문화체육관광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심석희는 상습상해 등의 혐의로 법정 구속된 조 전 코치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상해) 등의 혐의로 지난해 12월 중순 추가 고소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방송사 관계자는 “이미 한 달 전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 취재까지 마친 상태였다. 심석희 선수와 부모의 동의를 얻기까지 한 달 가까이 묵혀둔 뉴스였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도매금으로 부도덕한 문제 집단으로 전락했다. ‘나는 아닌데…’라며 억울해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땠나’를 되돌아봐야 할 시기다.
그런데 부랴부랴 쏟아져 나오는 대책들은 말의 성찬과 수박 겉핥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실효성과 완결성, 지속성 측면에서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기 때문이다. 현직은 물론이고 전직 선수들 전수 조사가 과연 가능할까. 대한체육회가 밝힌 현장 조사 대상(회원종목단체 66개, 시도체육회 17개, 시군구체육회 228개, 시도종목단체 1070개)은 우리나라 체육계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방 뜨거워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냄비현상’이 되풀이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은 기우(杞憂)일까.
결국 이번에도 일벌백계(一罰百戒)가 사용될 듯싶다. 항상 그렇듯이 그 핑계는 예산 부족과 투입 인력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시범타로 한두 명만 본때를 보이면 나머지 모두가 정신 바짝 차려, 제2의 심석희를 예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이겠는가.
법과 제도, 신고센터가 없어서 심석희 사태가 벌어진 게 아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지도자와 선수 간의 갑을(甲乙) 관계 청산과 성적 지상주의 탈피 없이는 제2, 제3의 심석희는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이제 심석희는 단순 폭행 피해자가 아닌 성폭행 피해자로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고소장에 밝힌 지난 4년간의 성추행과 성폭행으로 인한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아픈 상처를 다시 들춰내야 하는 법정공방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 전 코치는 성폭행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무고 등으로 맞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심석희의 성폭행 추가 고소에 대해 ‘용기’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 재발을 막기 위해 ‘희생’을 한 것이다. ‘혹시나 모를 조 전 코치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를 저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라는 폄훼는 곤란하다. 단순히 그것이 목적이라기에는 한 여성으로서 너무 큰 희생을 했기 때문이다.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신유용의 ‘미투’는 그 희생이 이끌어낸 결과다.
미투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에야말로 스포츠계의 성폭력과 구타 근절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 세워지고 엄격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이 가능한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