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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유근형]이해찬의 ‘버럭 금지’서약서

입력 | 2019-01-17 03:00:00


유근형 정치부 기자

“달콤 살벌한 맛이었지.”

더불어민주당 A 의원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호기롭게 이야기를 꺼냈다. 당내 최다선(7선) 이해찬 대표(67)와 마주 앉아 맞담배를 피우며 지역 현안과 정국을 논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담배 몇 개비를 피우면서 불은 직접 붙였다고 한다. 학창시절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나온 학생처럼 상기된 표정의 A는 “그 ‘형님’이 곧 칠순이지만 아직 술도 젊은 의원들 못지않게 하고, 소탈한 면이 많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장면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이 대표 별명은 ‘버럭 해찬’. 그만큼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이란 인식이 강했다. 그의 2007년 저서 ‘청양 이 면장 댁 셋째아들 이해찬’을 읽으며 생긴 이미지 탓도 있다. 이 대표는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데, 나의 인상이 깐깐하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고, 그 위에 실없이 분을 바르고 싶지는 않다”고 썼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이 대표가 ‘변화’를 선택한 건 지난해 당 대표 선거를 준비하면서다. 당시 이 후보는 캠페인 기간 내내 간담회 15분 전 등장해 막내아들뻘인 20, 30대 말진(막내) 기자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았다. 연설 말미엔 한 예능프로 제목을 빗대 “한 표 줍쇼∼”라며 폴더 인사를 하기도 했다. “버럭 해찬이 부드러워졌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취임 5개월이 지나고 다시 이전의 이해찬으로 돌아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대표의 당 내 장악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당내 소통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비공개 회의석상에서 이 대표가 ‘가자’ 하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들 한다. 이 같은 불만이 2020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한꺼번에 터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여당 중진들도 있다.

언론과의 소통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 대표는 개별 언론사 인터뷰 대신 정례기자간담회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취임 후 ‘24일에 한 번꼴’인 6회 개최하는 데 그쳤다. 카메라 기자들에게 “길거리에선 말 안 한다”, “그만들 해라”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 적도 있다. 장애인 비하 논란 등 잇따른 설화(舌禍)가 ‘소통 감수성’ 부족에서 나온 실수라는 지적도 있다.

당 안팎의 우려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 이 대표는 또다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박기후인’(薄己厚人·스스로에게 더 엄하고 국민께는 더 낮게 다가간다)을 새해 모토로 삼았다.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선 ‘버럭 금지’ 서약서를 쓰기도 했다. 최고위원회의를 참석자가 대폭 늘어난 확대간부회의로 개편했고,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현장’ 최고위도 자주 열겠단다. ‘나홀로 리더십’을 극복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통의 형식보다는 ‘내용’의 변화가 절실해 보인다. 소통의 무대가 아무리 화려해져도 주연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후배 의원들과 맞담배를 마다하지 않았던 마음이라면 의외로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유근형 정치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