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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어떻게 키우나” 부모들 ‘잿빛공포’

입력 | 2019-01-17 03:00:00

“미세먼지 탓에 한국 떠나고 싶다”… 이민카페에 사흘새 100여건 글
아토피-천식 앓는 자녀 있는 가정, 농도 짙은 기간 맞춰 해외여행도




직장인 이지은(가명·30) 씨는 최근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헤드헌터를 연결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일이 구해지는 대로 이민을 가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고연봉의 안정적인 대기업에 다니는 이 씨가 이민을 결심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이 씨는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성 피부염’을 얻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를 앓았지만 미국에서 생활한 지 6개월 만에 싹 사라졌던 피부질환이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면 가려움이 심해 외출도 하지 않았다. 이 씨는 “아직 미국에 집도 못 구했지만 에어비앤비에 몇 달간 머무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을 떠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는 날이 잦아지면서 건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부나 기관지 질환을 앓던 사람들은 쾌적한 환경을 찾아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수도권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13∼15일 3일간 미국 등지로의 이민 정보를 제공하는 회원수 약 9만 명의 네이버 카페 ‘미준모’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이민가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 100여 개 올라왔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2013∼2017년 블로그, 커뮤니티 등에 게시된 글 1억2700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미세먼지’와 ‘이민’이 결합된 언급은 2015년 125건에서 2017년 1418건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아이 가진 부모들은 미세먼지가 극심해지는 기간에 맞춰 아이와 함께 ‘도피성 여행’을 떠나기까지 한다. 미세먼지가 뇌질환, 호흡기질환, 피부질환 등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다. 한 달간 외국에서 생활하기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 ‘일 년에 한 도시 한 달 살기’에는 ‘방학인데도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 못 나가고 집에만 있는 아이가 안쓰러워 캐나다 한 달살이를 위한 비행기표를 급하게 예약했다’ ‘이번 미세먼지 여파로 아이의 알레르기가 너무 심해져 비자가 쉽게 나오는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간 살아 보려고 한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세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주부 김지은 씨(33)는 “천식과 아토피를 앓는 아들의 증세가 갈수록 심해져 호주 이민을 알아봤지만 10억 원이 넘는 돈이 든다고 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엄마들끼리 아이만 데리고 한 달이나 일 년으로 기간을 정해 쾌적한 나라에 가서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영희 국제이주기구(IOM) 이민정책연구원 교육협력기획관은 “아토피, 천식 등 아이들의 질병 문제로 수도권을 벗어나 공기 좋은 시골로 주거지를 옮기는 ‘국내 이주’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다”며 “자연재해, 기후변화 등 환경적 요인이 이주 원인이 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미세먼지도 사람들의 주거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한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