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탓에 한국 떠나고 싶다”… 이민카페에 사흘새 100여건 글 아토피-천식 앓는 자녀 있는 가정, 농도 짙은 기간 맞춰 해외여행도
직장인 이지은(가명·30) 씨는 최근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헤드헌터를 연결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일이 구해지는 대로 이민을 가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고연봉의 안정적인 대기업에 다니는 이 씨가 이민을 결심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이 씨는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성 피부염’을 얻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를 앓았지만 미국에서 생활한 지 6개월 만에 싹 사라졌던 피부질환이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면 가려움이 심해 외출도 하지 않았다. 이 씨는 “아직 미국에 집도 못 구했지만 에어비앤비에 몇 달간 머무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을 떠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는 날이 잦아지면서 건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부나 기관지 질환을 앓던 사람들은 쾌적한 환경을 찾아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수도권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13∼15일 3일간 미국 등지로의 이민 정보를 제공하는 회원수 약 9만 명의 네이버 카페 ‘미준모’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이민가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 100여 개 올라왔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2013∼2017년 블로그, 커뮤니티 등에 게시된 글 1억2700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미세먼지’와 ‘이민’이 결합된 언급은 2015년 125건에서 2017년 1418건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조영희 국제이주기구(IOM) 이민정책연구원 교육협력기획관은 “아토피, 천식 등 아이들의 질병 문제로 수도권을 벗어나 공기 좋은 시골로 주거지를 옮기는 ‘국내 이주’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다”며 “자연재해, 기후변화 등 환경적 요인이 이주 원인이 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미세먼지도 사람들의 주거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한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