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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로렌츠 쇼이러 “영감 얻는 최고의 방법은 많이 보는 것”

입력 | 2019-01-17 03:00:00

영화 ‘아쿠아맨’ 해저도시 밑그림 그린 콘셉트 아티스트 크리스티안 로렌츠 쇼이러




영화 ‘아쿠아맨’에서 물속으로 가라앉은 도시 ‘아틀란티스’와 해마, 상어 떼. 콘셉트 아티스트 크리스티안 로렌츠 쇼이러는 영화에서 바닷속 7개 왕국과 생물들을 생생하게 디자인했다. 영화 제작 초기 콘셉트 아트를 통해 방향성을 잡아가는 경우도 많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돔 모양 고대 건축물은 역사를 증명하듯 군데군데 기둥이 잘려 있다. 이끼로 덮인 건물들 사이로 레이저를 쏘는 상어와 다리가 달린 해마가 대치하는, 비극의 도시 아틀란티스. 현란한 색채로 구현한 해저 도시의 디테일은 지난해 12월 개봉해 496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아쿠아맨’의 볼거리 중 하나다.

서울 동대문구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10일 만난 콘셉트 아티스트 크리스티안 로렌츠 쇼이러(52)는 영화 장면으로 재현된 이 해저도시의 초기 디자인을 맡았다. 그는 이날부터 이틀 동안 열린 ‘2018 콘텐츠원캠퍼스 구축운영 성과발표회’ 참석차 내한했다. 쇼이러는 “1년 6개월 동안 오로지 ‘아쿠아맨’ 일러스트에 매달렸다. 거대한 해파리들로 이뤄진 수직적인 해저도시를 구상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영화뿐 아니라 비디오 게임, 테마공원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크리스티안 로렌츠 쇼이러.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그는 지금까지 32편의 영화에 참여한 내로라하는 콘셉트 아티스트다. ‘제5원소’(1997년), ‘타이타닉’(1997년), ‘매트릭스’(1999년), ‘맨 오브 스틸’(2013년) ‘300: 제국의 부활’(2014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년) 등 그가 참여한 작품들이 받은 아카데미상만 16개.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콘셉트 아티스트는 영화, 만화, 게임 등의 제작 단계에서 구현될 장면의 시각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직업이다. 영화로 따지자면 대본이나 감독의 상상을 디자인을 통해 구체화하는 역할이다.

그런 만큼 그는 “콘셉트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강조한다. 영감을 얻는 방법은, 뻔하지만 “많이 보는 것”이 답이라고. ‘아쿠아맨’ 제작에 참여할 때도 바티칸, 피렌체, 베네치아 등을 여행하면서 눈에 담아둔 돔 형식의 건축물을 떠올렸다. 그는 “사원을 보러 꼭 쿠알라룸푸르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선한 콘셉트 아트를 내놓기 위해서는 인터넷 검색도 필수”라며 웃었다.

시놉시스만 보고 콘셉트 아트를 완성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아쿠아맨, 슈퍼맨처럼 원작에서 정형화된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콘셉트 아티스트의 자율성이 높은 편이다. ‘맨 오브 스틸’에서는 직선 대신 곡선만으로 슈퍼맨의 고향 크립톤 행성을 구체화했고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는 고담 시티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기 위해 조명 대비에 신경을 썼다.

“수많은 아티스트가 협업을 통해 내놓은 콘셉트 아트를 영화에 차용하는 건 결국 감독입니다. 팀원들, 감독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이유죠.”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그는 동물학자인 아버지와 아트스쿨에서 예술을 전공한 어머니 밑에서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다. 1997년 포트폴리오를 들고 무작정 떠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임스 캐머런이 만든 시각효과 업체 ‘디지털 도메인’에 입성하면서부터 영화 콘셉트 아티스트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시나리오나 감독의 생각에 의존하는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에 대해 “뛰어난 대본과 감독이 있다면 문제없다”면서도 “SF 장르 등 기존 작품과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창조하려면 콘셉트 아티스트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국 영화를 보며 자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영화 ‘설국열차’에 구현된 세계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언젠가 꼭 작업을 함께 해보고 싶어요.”(웃음)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