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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감독의 신통방통한 한 수가 한국축구를 살렸다. 손흥민(27·토트텀)의 중국전(16일·한국시간) 선발 출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칫 선수도 잃고 승부도 망칠 수 있는 외줄타기의 순간에 자신의 판단을 믿고 승부수를 던진 벤투의 판단은 옳았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C조 조별리그 중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초미의 관심사는 손흥민의 출전여부였다. 그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 때문에 감독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팀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었다.
선수를 아끼자는 흐름이 조금 더 강했다. 체력 때문이다. 손흥민은 지난달부터 소속팀에서 3~4일에 한 경기를 뛰며 피로감이 많이 쌓인 상태였다. 또 7시간의 비행과 4시간의 시차, 그리고 날씨 적응도 불안한 요소였다. 이미 16강을 확정했기 때문에 토너먼트를 대비해 체력 안배를 해주자는 여론이 대세를 이뤘다.
대표팀 주장이자 에이스가 빠져선 곤란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손흥민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앞서 치른 2경기에서 부진한 경기력을 보인 것도 출전 명분에 힘이 실렸다. 중국을 이겨 조 1위가 되면 휴식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점, 그리고 최근 두 차례 A매치에서 중국에 이기지 못한 결과(1무1패) 때문에 이번에 기를 꺾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틀 내내 벤투 감독의 입에 시선이 쏠렸다. 중국의 관심도 온통 손흥민의 출전여부였다. 경기 전날 기자회견에서 벤투 감독은 “손흥민과 충분히 상의해보겠다”며 뜸을 들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위험부담은 따르겠지만 공격적으로 해 승부를 보겠다”는 그의 말에 힌트가 숨어 있었다. 손흥민 투입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었을까. 그는 선수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혹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손흥민은 선발로 그라운드에 섰다.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순간에는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선발 출전의 효과는 확실했다. 왜 에이스인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종횡무진이었다. 주장의 복귀로 동료들은 힘이 났다. 경기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패스의 질도 좋아졌다. 세트피스의 위력도 더해졌다. 다양한 공격으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반대로 상대는 풀이 죽었다.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자 반칙이 쏟아졌다. 경기 초반 강한 압박을 보였지만 이내 기가 꺾였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완패를 인정했듯 중국은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경기 전 도발을 일삼던 중국 팬들도 입을 닫았다.
벤투 감독은 손흥민이 여러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는 점과 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흥민의 노력과 희생’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의 합리적이고 냉정한 판단이 아니었다면 이런 성과물도 없었을 것이다. 벤투 감독은 아시아 최고 스타의 활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이번 경기는 축구 감독의 판단력이 승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지도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