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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학력저하 꼬리표’ 못뗀 혁신학교 10년

입력 | 2019-01-18 03:00:00

첫 도입때 13곳→1711곳으로 급증, 전체 학교의 15%… 초등교에 편중
연간 4000만원 예산지원하면서 교육청, 재지정 평가 제대로 안해
10년동안 855곳중 탈락 11곳뿐… 평가 기준 높인 자사고와 대조적
지정 반대하는 주민과 갈등 빚기도




전국의 15개 시도교육청 중 8곳은 혁신학교를 평가해 재지정하는 기준 자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가 17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혁신학교 재지정 기준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올해 도입 10년을 맞는 혁신학교가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양적 확대’에만 치우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132배 급증했지만 검증은 無

본보 확인 결과 현재 전국의 혁신학교는 1711곳이다. 2009년 ‘공교육 혁신’을 목표로 김상곤 당시 경기도교육감 주도하에 경기도에 13곳이 생긴 후 10년 만에 약 132배로 증가했다. 전체 학교(초중고교)의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초중고교 6곳 중 1곳은 혁신학교인 셈이다. ‘혁신학교’는 학생 스스로 체험과 토론을 통해 주체적으로 학습하는 창의적 교육을 목표로 한다. 교사 개개인의 자율적 교육 방법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주입식을 탈피한 새로운 교육을 기대하며 혁신학교에 아이를 보낸 학부모가 많았다.

문제는 혁신학교가 제대로 된 평가절차 없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동안 전체 혁신학교 1711곳 중 855곳이 재지정을 신청했다. 혁신학교는 연평균 4000만 원, 최대 8000만 원을 교육청에서 지원받는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교사가 자유롭게 만들어보라는 취지에서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지역에 따라 3∼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재지정을 신청한 혁신학교 855곳 중 탈락한 학교는 11곳에 불과했다. 혁신학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지정 시기가 되지 않은 대전, 울산을 제외한 교육청 15곳 중 12곳에서 재지정 탈락 학교는 한 곳도 없었다. 특히 서울 경기 충북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등 교육청 8곳은 재지정 기준 자체가 없었다. 재지정 기준 점수가 있는 교육청들도 △민주적으로 학교가 운영되는지 △교장과 교사가 수평적인지 등 정성적인 평가를 통해 재지정을 심사했다. 충북도교육청 관계자는 “혁신학교는 정량평가를 안 한다”며 “중점 추진 과제나 교육과정 목표를 종합적으로 심의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혁신학교가 객관적인 평가 없이 무분별하게 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울의 한 일반 초등학교 관계자는 “큰 금액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만큼 엄격히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자율형사립고의 재지정 기준을 교육당국이 이전보다 10점 또는 20점이나 대폭 올린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혁신학교는 관대하게, 자사고는 가혹하게 평가하지 않도록 교육청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 “공부 안 시켜” 학부모 선호도 감소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학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토론을 중시하고 경쟁을 지양한다는 취지로 수업 진도를 제대로 나가지 않거나 시험을 덜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혁신학교 기피 현상마저 생기고 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는 주택 면적이 같아도 혁신학교 배정 여부에 따라 집값이 차이가 난다. 혁신학교인 Y초교에 배정받는 동은 일반학교인 S초교에 배정되는 동보다 집값이 싸다.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 주변에 최근 입주한 한 아파트는 분양과정에서 “자녀가 S초교에 배정된다”고 홍보해 인기를 끌었다.

혁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고학년이 돼서 일반학교로 전학을 가는 사례도 많다. 경기 김포시의 소규모 혁신학교인 K초교에는 매년 30명 내외가 신입생으로 들어오지만 졸업생은 10명대로 줄어든다. 5, 6학년이 되면 학교를 옮기는 학생이 늘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중고교에 가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데 계속 혁신학교에서 놀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내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자 학부모들이 “교육감 자녀는 외고 졸업하면서 왜 우리 아이는 혁신학교에 밀어 넣느냐”며 반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6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혁신학교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고교 11.9%, 중학교 5.0%로 전국 평균(고교 4.5%, 중학교 3.6%)보다 높았다. 혁신학교의 절대 다수가 초등학교(1028곳)이고 입시와 직결되는 중학교(527곳)와 고교(156곳)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 전문가들은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려는 혁신학교의 방향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최소한의 기초학력은 유지하면서 자율성, 창의성을 키워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무리 창의적인 교육을 해도 학생이 기초학력 미달로 남는 건 교육의 실패”라며 “혁신학교의 방향성을 재점검해 보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지정을 확대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혁신학교 확대는 교육감들이 재량을 가지고 운영하는 것이어서 교육부가 재지정 평가에 간섭할 순 없다”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조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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