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 첫날 19건 신청
《 신산업을 키울 기술력이 있어도 규제 때문에 사업 추진이 원천 봉쇄된 기업을 지원하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17일부터 시행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18개 기업이 신청한 19개 규제 샌드박스 신청사업을 공개하고 다음 달 이 사업들에 대해 임시허가 여부 등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업들은 질병 예측 유전자 검사, 블록체인 해외송금, 카카오톡을 통한 과태료 고지, 디지털 버스광고 허용 등을 요청했다. 》
17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규제 완화를 신청한 18개 기업은 이처럼 기술력이 있는데도 현실과 동떨어진 법령 때문에 원천 봉쇄돼 애로를 겪어 왔다. 규제 샌드박스는 각종 법령 때문에 표류 중인 사업을 제한된 범위 안에서 허용하는 제도다. 아이가 놀이터 모래밭에서 노는 것처럼 기업이 마음껏 기술 개발과 혁신을 하라는 취지다.
규제 샌드박스 신청 첫날 기업들의 신청이 쇄도한 것은 정부가 강조하는 혁신성장을 위한 신산업인데도 규제에 걸려 시동조차 못 건 사업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조인스오토’는 자동차를 폐차할 때 드는 비용을 온라인으로 비교해 주는 서비스를 시작하려 했지만 자동차관리법의 규제에 걸렸다. 이 법은 재활용업에 등록하지 않으면 폐차 대상 자동차를 ‘알선’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 회사가 하는 ‘비교 견적’이 일종의 알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게임 업체인 ‘VRisVR(브이리스브이알)’은 차량에서 가상현실(VR)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동형 VR트럭을 만들어 공급한다. 하지만 현행 게임산업법에 따라 VR 기기 운영 허가를 받으려면 영업장 주소가 있어야 한다. 이 회사의 이승익 대표는 “과거 푸드트럭처럼 VR트럭을 운영하려 해도 규제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규정이 모호해 기업이 불편을 겪는 사례도 많다. KT와 카카오페이는 스마트폰으로 공공기관 모바일 고지서를 쉽게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공공기관이 카카오톡 등 메신저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고지서를 보낼 때 KT 등 통신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일일이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기업이 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에서 도전하려 해도 규제에 손발이 묶이며 시작조차 못 한 기업도 많다. ‘차지인’은 일반 콘센트를 활용해 전기차와 킥보드 등을 충전할 수 있는 충전용 콘센트를 개발해 충전 사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사업자로 등록하면 전기차만 충전할 수 있는 데다 한전을 제외하면 일반 건물의 전기를 소비자에게 돈을 받고 팔 권한이 없어 사업이 표류돼 왔다. 차지인은 한정된 지역에서라도 시범 사업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요금이 줄어드는 등 소비자 편익이 늘어날 수 있는데도 규제에 부딪혀 사업을 못 하는 기업도 신청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바이오 기업 ‘마크로젠’은 현재 의료기관만 할 수 있는 유전자 질병 예측 검사를 일반 유전자 검사 기관에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소비자가 의료기관에 유전자 질병 예측 검사를 신청하면 마크로젠 등 일반 유전자 검사 기관이 이를 시행한다. 중간 단계에 의료기관이 끼며 비용이 2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게 마크로젠의 설명이다.
○ 규제 샌드박스 2개월 내 처리 방침
다만 한 업체가 임시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업체에까지 소급 적용되진 않는다. 해당 기업에만 예외적으로 허가를 내주는 것이라 일일이 신청해야 임시허가를 받을 수 있다. 법령이 정비되면 모든 업체가 적용받을 수 있다.
이날 자율주행 배달로봇 업체인 ‘우아한형제들’과 앱 기반 중고차 대여 업체인 ‘더트라이브’는 규제 샌드박스 신속 처리 신청을 통해 자신들의 사업이 어떤 규제에 걸리는지 문의했다. 과기정통부는 이 업체들에 30일 내에 관련 규제 내용을 알려야 한다. 조치 없이 30일이 지나면 규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이새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