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내 아이도 7년 전 파리 도심에 있는 출판사로 생애 처음 출근을 했었다. 긴장해서 집을 나서던 모습과는 달리 퇴근해서 들어오는 표정은 편하고 밝았다. 아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너무 궁금해서 종일 무슨 일을 했냐고 물었다. 심부름을 하고, 배송할 책들을 끈으로 묶고, 책 상자 조립하는 것을 구경했다고 했다. 다음 날에는 노끈 잘 묶는 법, 잉크를 고루 묻혀 도장 잘 찍는 법을 배웠다며 자랑스레 그 노하우를 알려 주었다. 마지막 날에는 편집 디자이너에게 잡지 제작 과정에 대해 배웠고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했다며 으쓱해했다.
연수가 끝난 후 아이는 10쪽짜리 보고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정해진 양식에 따라 날마다 간단한 업무 일지와 자가 평가를 적었다. 연수기관 평가와 인터뷰, 부모 평가란의 질문들에 대한 답도 덧붙였다. 보고서를 바탕으로 담임교사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필요한 생활기록부에 연수 이수 여부를 기재한다.
종합병원이 인기 있는데 자리 구하기가 어렵고, 막상 연수를 하게 되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십상이다. 의사가 꿈이었던 아이 친구는 개인 병원에서 연수를 하게 되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안 하고 구석에서 책상만 지키고 있어야 해서 너무 지루했다고 한다.
반면 음악 스튜디오에서 연수를 한 친구는 영상 편집 기술까지 익혀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지금은 소르본의 교수가 된 옛 제자는 통조림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연수를 했다. 해마다 이맘때 우리 동네 마트의 계산대에는 어설프게 봉투에 물건을 담아주는 중3 연수생이 있다.
직업 연수는 진로 계획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진로를 확정 짓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 어떤 일들을 하면서 돈을 버는가’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음으로써 직업과 경제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체득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율성과 새로운 환경 적응력을 기르고 직업과 노동에 대한 선입견을 깨게 하는 것이 목표다. 중학생 직업 연수는 어떤 직업인이 되어야 하는가를 배우는 시민 교육의 일환으로 진로 결정을 위한 사회 경험 기회를 교육제도화한 것이다.
사실 나는 아이가 연수를 받던 당시에는 이런 취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뭔가 학술적인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인맥을 총동원해 권위 있는 출판사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파리에서 중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연수도 나쁜 연수도 없다던 동료 교사의 말도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얼마 전, 이제는 의대 4학년이 된 아이에게 직업 연수에서 뭐가 제일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학교 급식 대신 날마다 출판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직장인이 된 기분이었다나.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