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8000만~1억원 배상책임’ 1심 그대로 인정 “배상 불인정 일본 판결, 받아들이면 사회질서 위반”
2014년 10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 등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주식회사 후지코시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News1
서울고법 민사12부(부장판사 임성근)는 18일 김계순씨(90)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27명이 일본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후지코시 측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이번 사건이 일본 법원에서 내린 판결에 귀속되는지 여부였다. 김씨 등은 2003년 일본에서 후지코시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항소심, 상고심에서 모두 패소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일본 법원은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가졌다”며 “일제강점기의 국가총동원법·국민징용령·여자정신근로령이 한반도와 원고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전제로, 당시 시행되던 메이지헌법과 관련 법령에 근거해 피고의 불법행위책임 등을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일본 판결의 판결 이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판단한다”며 “이번 사건의 소송이 일본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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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후지코시 측 주장에 대해서는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었는데, 그런 주장으로 손해배상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징용영서에 따라 강제동원된 피해자뿐만 아니라 근로정신대원으로 지원했던 원고 등에 대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 등이 일본에서 이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패소 판결을 받았지만, 일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피고의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소멸 주장도 배척한 사례”라고 밝혔다.
근로정신대는 일본 군수기업에 동원돼 착취당하며 일한 근로자다. 태평양 전쟁 당시 후지코시는 어린 소녀들에게 ‘일본에 가면 공부도 가르쳐 주고 상급학교도 보내준다’며 1089명을 데려가 혹독한 노동을 시켰다.
당시 12~18세였던 피해자들은 이 같은 교사들의 권유로 근로정신대에 지원해 1944년 가을부터 1945년 7~10월까지 일본 도야마시의 후지코시 공장에서 급여도 받지 못하고 매일 10~12시간씩 군함·전투기 부품을 만드는 작업 등을 했다.
이후 피고 측이 항소해 그해 12월 서울고법으로 사건이 접수됐지만 지난해 12월 마지막 재판이 열리기까지 4년 동안 계류됐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멈췄던 후지코시 소송도 재판이 재개됐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