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중대·상당성’이 관건 도망·인멸 우려는 낮아 檢 임종헌과 형평성 내세울듯…직권남용 판단 주목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에서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친 후 귀가하고 있다. 사법부 수장을 지낸 고위인사가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기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2019.1.12/뉴스1 © News1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이 본격 착수 7개월여만에 최종 책임자로 지목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을 상대로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판단은 법원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검찰이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 출신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할 경우 후배 법관 앞에서 검찰 측과 공방을 벌이게 될 예정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가법상 국고손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허위 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히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16기)을 먼저 구속기소 하며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했다고 적시한 만큼,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지시받고 보고했다고 보는 공범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점을 들어 형평성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앞서 박병대(62·12기)·고영한(64·11기)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관여 범위 및 공모 관계 성립’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각한 바 있어,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강제징용 소송 관련 전범기업 측 대리인인 김앤장 변호사와 여러차례 독대한 정황 등 본인이 직접 나서 개입한 부분을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주거와 신분이 확실해 도망의 우려가 없다는 점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압수수색 당시 자발적으로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제출하고, 검찰의 소환에 순순히 응하며 수사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인 점 또한 구속수사 필요성을 약화할 수 있다.
객관적 증거 제시에도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고, 검찰 출석 전 대법원 앞에서 입장발표를 하며 전직 대법원장 출신으로 후배 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을 한 점 등으로 증거인멸 우려를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미 검찰이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다고 자신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증거가 수집돼 인멸 우려가 없다고 법원이 판단할 경우 구속 사유로 인정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검찰은 앞서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됐던 박 전 처장에 대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구속영장을 재청구 했다. 검찰은 공모 관계 소명 부족 등 법원의 기각 사유를 분석하고 보완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추가 혐의를 더해 재청구를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심문에 불출석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구인장을 발부받을 수 있으나, 통상의 경우 피의자가 출석하지 않으면 영장전담판사가 서류심사만으로 구속 여부를 판단해왔다. 이들에 대한 심문은 이르면 내주 초 열릴 예정이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