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3차례 소환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바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을 ‘최종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로 지목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바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7개월 넘게 이어진 검찰 수사로 재판 개입 의혹 등이 일부 확인되면서 사법부와 재판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취임 당시 ‘재판 독립’을 강조했던 양 전 대법원장은 며칠 후 후배 법관 앞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검찰 수사 이후 헌정사상 초유의 일들이 법원에 꼬리를 물어 법관들을 자괴감에 휩싸이게 했다. 사법부의 치욕이라는 차원을 넘어 헌정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전현직 대법관들을 비롯해 100명이 넘게 검찰 조사를 받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구속까지 됐다.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시작해 재판 개입 등 각종 의혹으로 번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사법부는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검찰 수사는 곧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법정에서 진상과 책임소재를 가리는 작업이 이어질 것이다. 누가 구속되고 누가 처벌되고를 넘어 사법 신뢰를 무너뜨린 한 시대의 불행을 매듭지을 때가 됐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사법 권력’은 보수에서 진보로 대대적으로 교체됐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법관 탄핵을 촉구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권력기관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반면 과거 정권에서 요직을 맡았던 많은 법관들은 검찰 수사로 치명상을 입었다. 사법부가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는 차원을 넘어 개혁의 이름으로 새로운 부조리와 폐단을 잉태하는 잘못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법 권력의 얼굴만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양태가 되풀이돼 훗날 ‘신(新)적폐’라는 비판이 제기된다면 사법 신뢰 회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사법부가 고인 물처럼 사회 변화와 시대정신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더 개방적이 되고, 더 미래지향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권력이나 이념에 흔들리지 않고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이야말로 혁신의 근간이다. 법관들이 사법부의 존재 이유인 기본부터 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