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前대법원장 구속영장]조서열람 끝낸지 하루만에 영장
18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앞서 11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기 전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검찰이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에게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유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에서 세 차례 피의자 신문을 받을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해 구속영장실질 심사에서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을 재판 개입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고 책임자’로 지목하며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조서 열람을 마무리한 지 하루 만이며 11일 첫 소환조사 이후 일주일 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그동안 3차례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조서 열람을 포함하면 총 5차례 검찰에 출석했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업무상 상하관계에 의한 지휘 감독에 따른 범죄행위’라고 판단했다. 사법부의 업무 시스템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법원행정처 차장 등 수직적인 상하관계에 따라 재판 개입과 사법정책이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상급자일수록 더 높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핵심적 중간책임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수감 중)이 이미 구속된 만큼 최종적 결정권자이자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청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검찰은 앞서 확보한 전·현직 판사들의 진술과 객관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어 증거 인멸의 우려가 높다고 결론 내렸다.
○ 영장 260쪽, 임 전 차장보다 26쪽 늘어
그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은 2015, 2016년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와 독대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소송 재판 지연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에는 40여 가지의 범죄사실이 포함됐고, A4용지 260쪽 분량으로 늘어났다. 영장청구서 분량이 임 전 차장(234쪽)과 박 전 대법관(200쪽)보다 많아졌다.
○ 박 전 대법관만 영장 재청구
검찰은 또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박 전 대법관의 영장 청구서는 범죄사실이 30여 가지이며 지난해 12월 기각됐던 첫 번째 영장청구서(150여 쪽)보다 분량이 늘었다. 검찰이 보강 수사를 통해 판사 출신인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의 판사 재임용 탈락 취소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에 박 전 대법관이 조기 선고를 요구한 혐의 등을 구속영장에 추가했다.
반면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았다. 고 전 대법관이 검찰 조사에서 사실 관계를 인정한 부분이 박 전 대법관보다 상대적으로 많고, 범죄 혐의에 관여된 정도가 적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