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교통사고가 지구촌의 화제로 떠올랐다. 사고 차량 운전자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인 필립공이었기 때문. 1921년생인 그는 고령에도 운전을 즐기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 부부가 전용 헬기로 윈저성을 방문했을 때도 직접 핸들을 잡았다. 조수석에 오바마를, 뒷좌석에 여왕과 미셸을 태우고 유유히 오찬 장소로 차를 몰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2017년 고령 등을 이유로 왕실 업무에서 은퇴한 그가 운전대에 대한 애착만은 끊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계 곳곳에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특히 심각하다. 경시청에 따르면 2017년 75세 이상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 비중은 전체 사고 중 13%로 10년 전에 비해 거의 배로 늘어났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300만 명에 가까운 한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고령 운전자 사고 비중이 2012년 6.8%에서 2017년 11.1%로 급등했다. 영국에서는 만 70세가 넘으면 3년마다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고령 운전에 대한 우려와 안전대책은 필요하지만 나이만을 잣대로 삼은 일률적 규제는 안이한 발상이다. 노인에게 운전할 기회를 빼앗는 순간 스스로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인식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 존스홉킨스대의 추적연구에서도 운전하지 않는 노인은 운전하는 노인에 비해 요양병원에서 생활할 가능성이 4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고령 운전을 무조건 백안시할 게 아니라 부적격자를 제대로 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긴 해도, 필립공의 운전은 이제 그만 말려야 할 때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