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 커플]<3>시인 장석주-박연준 부부
장난 섞인 아내의 부탁을 남편은 짐짓 모른 체했다. 하지만 남편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이번 시집의 주인은 당연히 아내라고.
장석주 시인(64)이 5년 만에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문학동네)를 펴냈다. 박연준 시인(39)과 결혼한 2015년부터 3년간 써내려간 시를 엮었다. 시집 첫 페이지에는 ‘아내 박연준에게’란 일곱 글자가 또렷하다.
사진 촬영 내내 “민망하다”며 로봇 웃음을 짓던 박연준 시인. 장석주 시인은 그런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포즈를 취했다. 서로를 소개해 달라고 하자 “아내는 성품이 소탈하고 주변에 밝은 에너지를 전해준다” “남편은 한 번에 읽어낼 수 없는 어려운 사람이라서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오랜 망설임, 책으로 알린 결혼
“문학두뇌가 굉장히 명석하다고 느꼈어요. 학점도 잘 줬던 것 같고요.”(장)
“당시에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어요. ‘이상한 머플러를 두르고 다니는 강사’ 정도로 생각했죠. 10년 뒤 제가 그 머플러를 하게 된 건 ‘안비밀(비밀이 아님)’입니다.”(박)
두 사람은 2002년 한 대학 캠퍼스에서 서로를 처음 알게 됐다. 박 시인이 다니던 대학에서 장 시인이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남편은 아내의 반짝반짝한 산문을 눈여겨봤지만 정작 아내는 시에 빠져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유명 시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서로를 제대로 읽게 된 건 ‘시’로 소통하면서부터다.
장 시인이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 시인은 장 시인의 격려에 힘입어 그해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이후 e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 두 사람. 하지만 연인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사제지간, 돌싱(장 시인), 문단의 눈초리, 나이차…. 보이지 않는 벽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시작할 때도 많이 망설였고 사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도망가려 했어요. 아내가 저보다 젊고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비겁했죠.”(장)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장석주 시인은 정말 젊었어요. 50대 초반임에도 혼자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흰머리 한 올 없이 쌩쌩했죠. 성격이나 행동패턴도 역동적인 편이라 나이차를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박)
다가왔다 멀어지길 반복하는 남편을 용기로 붙든 건 아내였다. 오랜 고민과 ‘밀당’ 끝에 둘은 연인이 됐다. 잠시 이별하기도 했지만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관계로 지낸 기간이 무려 10년. 2015년 혼인신고를 하기 전까지 아무도 이들의 관계를 몰랐다고 한다.
“몰래 연애를 해도 가까운 이들은 결국 알게 되잖아요. 한데 저희는 나이차 때문인지 겹치는 인맥이 없어 끝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었죠.”(박)
혼인신고 후 1년쯤 지나 김민정 시인이 ‘책결혼’을 제안했다. 신혼여행 겸 시드니에서 한 달간 보낸 이야기를 담아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난다)로 세상에 부부임을 알렸다.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행복합니다. 잉걸불 속으로 걸어가는 한 쌍의 단도처럼 용감합니다’(박연준) ‘어느 해 여름 우리는 바닷가에서 쏟아지는 유성우를 함께 바라봤지요. 그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장석주). 지인과 팬들로부터 축하가 쏟아졌다.
○ 서로의 어깨에서 영글어가는 시심(詩心)
시인 부부의 일상은 어떨까. 두 사람 모두 매일 회사원처럼 바지런히 읽고 쓴다. 남편은 새벽부터 이른 저녁까지, 아내는 늦은 오전부터 새벽까지 노트북과 씨름한다. 볕 좋은 날엔 동네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미약하게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나눠지기도 하지만 결혼이란 제도가 주는 보편적인 책임과 의무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장 시인은 “우리 부부는 문학적 동지이자 동업자”라고 했다.
―시인 부부의 장점은 뭔가요?
“말하지 않아도 척척 통해요. 원고, 마감,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툭툭 내뱉어도 단박에 이해하고 배려하죠. 또 둘 다 책을 좋아해 끝없는 ‘책 수다’가 가능합니다.”(장)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 작가의 숙명을 이해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 같아요. ‘원고 써야 해. 며칠 다녀올게’ 하면 남편은 1초 만에 고개를 끄덕이죠. 남편 역시 일할 땐 동굴처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요.”(박)
―문학적으로 주고받는 영향도 클 것 같습니다.
“시를 쓰는 제가 남편이 산문에 소질이 있다며 독려했어요. 덕분에 조금 더 확장된 작가가 될 수 있었죠. 그간 영향을 받은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불현듯 깨닫고 남편에게 말했죠. ‘나 혼자 해낸 줄 알았는데 아닌 거 같아. 고마워’라고요.”(박)
“당연하죠.(웃음) 아내는 칭찬이 많아요. 시인에게도 격려가 중요한데 첫 독자인 박 시인의 격려에 늘 큰 힘을 얻습니다. 반면 저는 객관적으로 오목조목 평가하는 편이에요.”(장)
―상대방의 문학적 소양이 매력으로 작용하나요.
“비슷한 경험치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거잖아요. 아내는 모든 소재를 이야기로 만들 수 있어요. 시도 좋지만 산문을 정말 맛깔나게 잘 씁니다.”(장)
“삶을 바라보는 가치판단의 중심에 문학이 있어요. 자연히 문학적 소양이 상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죠. 장 시인이 쉼 없이 문학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 계속해서 쓰고 진취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낍니다.”(박)
―문학계 선후배로서 신경전 같은 건 없나요.
“독자층이 다르고 세대가 달라요. 젊은 독자들에겐 박 시인이 훨씬 유명해요. ‘우리는 서로…’를 냈을 때 독자 10명 중 8명이 박연준 시인의 글이 더 좋다고 하더군요. 감성적인 부분은 박 시인이 뛰어나고 저는 좀 분석적인 편이지요.”(장)
“등단한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장 시인의 시는 한결같이 젊고 힘이 넘쳐요. 그런 시적 감성이 어디서 샘솟는지 존경스럽죠. 끊임없이 읽고 공부하는 모습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가끔 저보다 책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 얄밉지만요.(웃음)”(박)
○ “아내에게 더 보호받는 느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요. 다만 사교생활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생활이 단순화됐죠. 집에 아내를 혼자 두면 애처로워요. 함께할 날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에 머물고 싶죠.”(장)
“오직 한 사람, 장석주에게 몰입하다 보니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의 극단은 휴머니즘 같아요. 결혼은 그 사랑을 체험하고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박)
넘치게 받으면서도 투정하는 사람. 모든 걸 챙기면서도 아쉬운 소리 한 번 못 하는 사람. 가정 안에서도 리더와 팔로어가 있다. 사랑의 크기가 다른 게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떨까.
“제가 오히려 남편을 아들처럼 돌봐요. 나이차가 꽤 나지만 어린 사람이 일방적 돌봄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남편은 속정이 깊지만 누굴 살갑게 돌보는 성격은 아니에요. 자기 일에 집중하면 옆은 전혀 못 보죠.”(박)
“아내가 주도권을 꽉 쥐고 있어요. 저는 꼬박꼬박 경어를 쓰는데 박연준 시인은 이따금 말도 낮추고.(웃음) 처음과 달리 관계가 역전됐다고 할까요. 결혼 후에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장)
언제 서로에게 특히 고마움을 느낄까.
“제가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남편이 저보다 더 펄쩍 뛰며 속상해하더군요. 그 모습에 ‘고맙다, 든든하다,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박)
“요리에 취미가 없는 아내가 제 건강을 위해 이따금 아침을 챙겨줘요. 적지 않은 나이라 건강식으로 채소, 된장, 청국장 같은 걸 만들죠. 올빼미형이라 밤잠이 모자랄 텐데 저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 감동을 받습니다. 지금은 제가 더 보호받는 느낌이에요.”(장)
○ “…해서 좋아요”
‘추억을 탕진한 채 돌아오는 당신, 원한다면 내 피의 전량을 드릴게요, 혈관의 다채로운 감정들, 중불에 뭉근하게 졸인 참극과 불행마저 가지세요…’(‘구월의 기분-연남동2’)
‘헤어진 사람의…’에는 서교동 연남동 베를린 등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부부가 손잡고 산책하거나 여행했던 곳들이다. 나란히 걸으며 나눴던 풍경 이야기와 마음이 시집 곳곳에 녹아 있다.
“죽음의 비극을 넘어서게 하는 힘은 사랑, 오직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시집을 통해 죽었던 연애세포를 일깨우고 고갈된 사랑의 에너지를 회생시키는 힘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장)
“헌사 ‘아내 박연준에게’에 붙들려 뒷장을 못 넘기겠더라고요. 그 일곱 글자가 전부처럼 다가와서 정말 행복했죠.”(박)
두 사람은 서로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구한 전공자라고 입을 모은다. ‘장석주란?’ ‘박연준이란?’ 짧은 질문에 긴 답변이 이어졌다. 모든 문장이 “…해서 좋다”고 끝났다.
“박연준 시인은 늘 새로워서 좋아요.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하죠.”(장)
“남편이 여러 번 깊이 실패한 사람이라서 좋아요. 가난, 고교 중퇴, 사업과 결혼 실패 등을 겪으면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극복해냈다는 게 놀랍죠.”(박)
“아내는 소소한 신경전 뒤에 늘 먼저 화해를 청할 정도로 마음이 넓어서 좋아요.”(장)
“장 시인은 양파처럼 까도까도 신기해서 질리지 않습니다. 논문을 쓴다면 연구거리가 넘치는 노다지인 셈이죠.”(박)
연인 시절 두 사람은 결혼이란 제도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오래 함께하다 보니 병원에서 법적 보호자 역할조차 할 수 없는 불편함 등을 겪으며 혼인신고를 했다. 내용이 넘쳐 결혼이란 형식을 취한 셈이다.
연애 10년, 결혼 5년차. 엄청난 사랑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시기를 지나 가족애에 가까운 사랑으로 넘어왔다. 완전히 편안하고 애처롭고 다정한 요즘이 더없이 좋다는 두 사람.
“아내가 웃으면서 이따금 같은 날 죽고 싶다고 해요. 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색하고 맞받아치죠. 저보다 살날이 한참 더 많이 남았는데 문학이든 생이든 더 즐겨야죠.”(장)
“장석주 시인은 세상을 애틋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에요. 2차선 도로에서 어미 꿩과 새끼인 꺼병이들이 총총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며 눈물을 글썽일 줄 아는 사람이지요. 그 정도로 여리고 따뜻하지만 엄살 없이 홀로 나아가는 의연함을 지닌 사람입니다.”(박)
두 사람은 언젠가 제주도에 작은 도서관을 짓고 뒤편에 집을 마련해 살고 싶단다. ‘2인분의 고독을 뜨겁게 늠름하게 받는’(‘우리는 서로…’ 장석주) 사랑으로 제주도 해변을 나란히 걷는 미래를 그린다.
● 시인 장석주-박연준 부부는
장석주 시인: 1979년 동아일보(문학평론) 조선일보(시)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햇빛사냥’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산문집 ‘새벽예찬’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등을 펴냈다.
박연준 시인: 2004년 중앙일보에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와 산문집 ‘소란’등을 펴냈다. 두 사람이 같이 쓴 책으로는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가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