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 ‘리그오브레전드’ 경기장 롤파크 가보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e스포츠 ‘리그오브레전드(롤)’의 국내 리그 ‘2019 LCK 스프링시즌’ 개막전이 16일 서울 종로구 롤파크 내 LCK아레나에서 열렸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선수들의 경기가 이어지는 중간중간 환호를 터뜨리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날 경기 티켓은 단 2분 만에 매진됐다. 2009년 출시된 롤은 2016년 9월 월간 사용자 1억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2분 만에 개막일 경기 매진
2009년(국내 2011년) 출시된 롤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 인기 e스포츠다. 2016년 9월 전 세계 월간 사용자가 1억 명이 넘었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다. 게임전문 리서치서비스 업체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롤의 시간점유율은 29.77%로 가장 높다. 12월 한 달 사용 시간만 184만3407시간이다. 2위 배틀그라운드(17.81%·110만3298시간)와 10%포인트 이상 차가 난다.
열기가 뜨겁다 보니 경기 관전 티켓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종종 암표가 나올 정도다. 선수들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팬들은 희열을 느낀다. 개막일 2경기는 예매 시작 2분 만에 표가 매진됐다. 경기당 티켓 가격은 평일 9000원, 주말 1만1000원이다. 하루 2경기를 패키지로 구매하면 할인가(평일 1만4000원, 주말 1만7000원)가 적용된다. 이날도 티켓을 구하지 못한 롤 팬 수십 명이 경기장 밖에 설치된 TV로 경기를 지켜봤다.
롤 월드챔피언십(롤드컵) 우승 트로피.
경기장 양쪽에 코치 박스를 마련해 스포츠적 요소도 극대화했다. 야구의 ‘더그아웃’과 비슷한 이곳에서 각 팀 코치들은 경기를 보고 선수들이 헤드셋으로 나누는 대화 내용을 들으며 전략을 구상한다. 세트가 끝날 때마다 코치의 작전 지시가 이뤄진다.
경기장 내 중계석이 2개인 것도 눈길을 끈다. 하나는 우리말, 다른 하나는 영어 중계 부스다. 라이엇게임즈 관계자는 “국내 리그의 수준이 세계 최고이다 보니 8 대 2 비율로 외국인 시청자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미국의 일부 매체는 국내 리그를 전담하는 취재진까지 두고 있다. 이전까지 게임 전문채널이 해오던 방송 제작도 올해부터는 라이엇게임즈가 직접 한다. 로보틱 캠, 무인카메라 등 총 30대의 카메라를 활용해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한다. 경기장 밖에는 팬 미팅존과 카페, PC방도 있다.
○ 그들은 왜 롤에 열광하나
14개 리그의 상위 24개 팀이 승부를 펼치는 롤드컵은 세계 롤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무대다. 지난해 11월 인천 문학 주경기장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의 시청자는 9960만 명이었다. SK텔레콤 T1팀 팬이라는 대학생 박동원 씨(26)는 “긴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축구 클럽들처럼 롤 팀들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타며 다양한 스토리라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리그의 실력이 급성장하면서 한국 팀들과의 대결 구도도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경기에서도 중국 팀이 롤 금메달을 따냈다.
게임을 일주일 단위로 업데이트해 팬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도 성공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꾸준한 변화를 통해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게임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 게임 제작사 측의 설명이다. 라이엇게임즈가 만든 가상 걸그룹 ‘K/DA’가 발표한 주제가 ‘POP/STARS’가 2억4000만 건 이상의 영상, 음악 조회 수를 기록하며 빌보드월드디지털 등 차트에서 1위를 하는 등 파급 효과도 크다.
○ 캠퍼스 안 e스포츠 경기장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프로축구 등 기존 스포츠 구단의 e스포츠 참여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11일 발표한 ‘2018 e스포츠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축구, 배구, 농구단 등을 운영하는 터키 스포츠클럽인 베식타시가 롤 팀을 창단해 리그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기존 스포츠 구단이 속속 e스포츠단을 창단하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축구 팀들이 ‘피파’ 프로 게이머를 영입해 e스포츠 리그를 출범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SK, KT 등이 스포츠단 내에서 e스포츠팀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9일 LCK와 2년간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맺는 등 e스포츠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계약 실무 담당자인 우리은행 홍민호 과장은 “20, 30대 젊은 고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LCK 타이틀 스폰서를 맡기로 했다. 최근 e스포츠가 아시아경기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진 것도 참여의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I)는 롤, 오버워치 종목 관련 장학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캠퍼스 내 경기장 ‘UCI e스포츠 아레나’를 짓기도 했다. 중국 베이징대도 지난해 e스포츠 관련 과목을 개설했는데, 120명 정원에 200명이 몰릴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국내에서는 연세대가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e스포츠 관련 강의 개설 방침을 밝혔다.
‘2018 e스포츠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한국 e스포츠 선수 152명이 해외 무대에 진출해 있다. 롤 91명, 오버워치 61명이다. 외국 선수들이 국내로 들어와 훈련캠프를 차리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단이 야구 선진국인 일본이나 미국 등으로 스프링캠프 훈련을 떠나는 것처럼 외국 e스포츠 선수들도 e스포츠 강국인 한국으로 와서 연습 상대를 구해 훈련한다.
다만 선수들의 수준만큼 국내 게임산업계의 관심이 따라가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지난해 아시아경기 e스포츠 6개 종목 중에 국산 게임은 하나도 없었다”며 “한국 게임업체들이 경쟁력 있는 e스포츠 관련 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
:: 리그오브레전드(LoL·롤) ::
2009년 미국 라이엇게임즈가 선보인 MOBA(멀티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 게임. 국내에는 2011년 출시됐다. 5명이 한 팀이 돼 상대 팀의 기지 ‘넥서스’를 파괴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각기 다른 속성을 가진 140여 종류 캐릭터(챔피언)가 재미요소다. 경기 시간은 20∼40분 정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 리그인 LCK 등을 포함해 전 세계에 총 14개 리그가 운영되고 있다. 매년 세계 최고의 팀을 선발하는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일명 롤드컵)’도 열린다. 지난해 인천 문학주경기장에서 열린 2018 롤드컵 파이널에는 2만6000여 명의 관중이 몰리기도 했다. 시청자는 9960만 명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됐으며 당시 한국팀이 은메달을 땄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