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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강남3구-양천-노원 등 진학률, 다른 區와 격차 최고 11.5배

입력 | 2019-01-21 03:00:00

[과학고-영재학교 진학 분석]서울 자치구별 5년간 실적 전수비교




#사례1.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김모 씨는 자녀가 만 4세가 되던 해부터 과학고·영재학교 입학을 준비했다. 의대와 명문 이공계대 진학을 위한 ‘직선 코스’라고 봤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각종 놀이와 사고력 수학 프로그램을 접하게 했고, 7세부터는 연산학원 등 3, 4개의 수학학원을 보내 본격적으로 초등 수학을 선행 교육했다. 앞으로는 계속 선행학습을 하면서 영재원 입학과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출전 준비를 할 계획이다. 김 씨는 “6학년까지 고1 수학을 떼야 올림피아드 출전을 바라볼 수 있다”며 “사교육 인프라가 갖춰진 강남이 아니면 준비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사례2.
서울 송파구에서 중2 자녀를 키우는 박모 씨도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박 씨는 당초 자사고 진학을 노려 왔지만 현 정부 들어 폐지 움직임이 가속화되자 유일한 ‘무풍지대’인 과학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지금까지 ‘수학의 정석’을 세 번 정도 돌렸는데 이 정도는 다들 한다”며 “자유학기제라 내신 부담이 없는 중1 때 집중적으로 선행이 이뤄진다”고 전했다. 평소 수학·과학 학원비는 월 150만 원이지만 수업 시간이 길어지는 방학 땐 300만 원 이상이 든다.

최근 우수한 교육과 대입 실적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과학고·영재학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올해 외고 경쟁률은 대부분 2 대 1 미만이었던 반면 전국 20개 과학고·영재학교 입학경쟁률은 3.54 대 1로 전년도(3.09 대 1)보다 일제히 상승했다. 이에 동아일보는 종로학원하늘교육과 함께 서울지역 25개 자치구별 중학교 졸업생들의 과학고·영재학교 진학 실적을 전수 분석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학교알리미에 공시된 학교별 진학 통계를 대상으로 했다.

분석 결과 이른바 강남, 목동 등 교육특구와 다른 지역 간의 격차가 최대 11.5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계에서는 “중학교의 공교육이 대동소이한 상황에서 지역별 격차가 이 정도로 나타난 것은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에 사교육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방증”이란 평가가 나왔다.

○ 강남구-중구 진학 실적 격차 11.5배

지난 5년간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46만3319명의 고교 진학 상황을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2574명(0.56%)이 과학고·영재학교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고·영재학교에 가장 많이 진학한 곳은 졸업생 3만246명 중 382명이 진학한 강남구였다. 1만 명당 126명이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서초구로 1만 명당 99명이 과학고·영재학교에 진학했다. 3위 양천구는 1만 명당 81명이 진학했다. 5년간 200명 넘는 학생이 과학고·영재학교에 진학한 서울지역 자치구는 강남구 외에 양천구(286명) 노원구(285명) 송파구(255명) 서초구(216명) 등 5곳뿐이었다. 5년간 가장 많은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자가 나온 상위 20개교를 뽑아본 결과 절반이 강남·양천구에 속했다.

반면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생이 가장 적은 곳은 중구로 졸업생 5268명 중 단 6명(1만 명당 으로 환산한 경우 11명 진학)만이 합격했다. 1위인 강남구와 1만 명당 합격자 비율로는 11.5배, 절대 수치로는 64배 차이가 났다. 중구 다음으로 진학생 비율이 낮은 곳은 동대문구(1만 명당 20명 진학), 중랑구(1만 명당 21명 진학), 금천구(1만 명당 22명 진학) 순이었다.

○ 극복 안 되는 지역 간 사교육 격차

전문가들은 지역별로 과학고·영재학교 진학 격차가 생기는 가장 큰 원인으로 △천양지차인 사교육 인프라 △입시 정보 비대칭 △동료 효과의 부재 등을 꼽았다. 과학고 입시학원들이 경제력이 높은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데다 관련 교육과 정보까지 이곳으로 쏠리다 보니 다른 지역은 지원할 엄두조차 못 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환철 수학교육개발실장은 “과학고·영재학교 진학 실적이 낮은 지역에도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다만 중학교 공교육이 수준별 교육을 못하게 돼 있다 보니 (사교육 뒷받침이 안 되는 지역은) 적절한 발굴과 교육, 입시정보 제공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입시컨설턴트 김은실 씨는 “수학올림피아드 준비 없이 서울지역 과학고에 붙는 학생은 0명이라고 봐야 한다”며 “전문 사교육 지원 없이는 도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과학고·영재학교 입시가 면접 위주의 ‘미니 학종(학생부종합전형)’화되면서 중학교 때부터 내신뿐 아니라 각종 스펙 관리를 해야 하는 것도 비교육특구 학교에 불리한 요인이란 분석도 나온다. 입시멘토업체 대표인 이미애 씨는 “자기소개서에 교내활동이나 자신의 진로를 위해 공부한 탐구보고서를 담아야 한다”며 “학교에 전통적 과학동아리가 있는지, 4∼5명 규모로 자율동아리를 만들 수 있는지, 학교 선생님이 어느 정도 지원해주는지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에서 과학고·영재학교 진학 실적이 가장 낮은 중구에서는 수년 전만 해도 학교별로 최상위권 4, 5명 정도가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구의 A중학교 교감은 “학생 수가 적으니 사교육 시장도 작고, 우수한 학생끼리 상호 자극을 받기도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그간 지역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과학고 선발전형을 여러 번 바꿨음에도 격차는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지역의 우수 학생들을 각 지역에 고르게 머물게 할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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