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축구대표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 번 제대로 부딪히고 죽어야 진짜 죽는 것이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60) 감독이 지난해 12월 24일 스포츠동아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났을 때 남긴 말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한창 진행 중인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솔직히 부담감은 있었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4강, 스즈키컵 우승으로 베트남 국민들의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다. 두렵기도 했고,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스스로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여러 차례 되묻기도 했다.
전망도 어두웠다. 이라크, 이란, 예멘 등 조별리그 D조에서 상대한 누구 하나 만만하지 않았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죽음의 조’가 틀림없었다. 3전 전패가 빤해 보였다. 그래도 겁먹지 않았다. “죽을 때 죽어야 진짜 죽는 게 아니겠느냐”며 제자들을 독려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라크, 이란에 내리 패했지만 예멘을 꺾고 조 3위를 확정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어 20일(한국시간) 요르단을 승부차기로 제압해 대회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는 데까진 해봐야 한다. 도전이 비록 실패할 수 있으나 후회는 한점 남기고 싶지 않다”는 목표는 이미 이뤄졌다. 베트남의 아시안컵 역대 최고성적은 8강(2007년)으로 이미 타이를 이룬 가운데 한 걸음만 더 오르면 완전한 새 역사가 쓰여진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도전자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올라가고 목표하는 곳이 무궁무진한 팀이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오히려 베트남을 만날 팀들의 부담이 크다. 이기는 것은 당연하고, 지면 큰 망신인 경기가 더욱 어려운 법이다. 0-1로 뒤진 베트남이 후반 동점을 만들고 연장전에서도 대등한 경기운영을 하자 승부차기에서 요르단은 잔뜩 자세를 낮췄다. 분위기에서 밀린 셈이다.
민첩하고 빠르며 물고 늘어지는 특유의 축구가 통하고 있다. “집중하라”는 말을 90분 내내 입에 달고 사는 박 감독의 의지대로 베트남의 조직력은 경기수가 늘어날수록 좋아진다. 자신감도 절정에 달했다. “우리에게 ‘즐기는 축구’는 사치다. 축구는 전투, 대회는 전쟁이다. 아시안컵이라는 전쟁에서 허무하게 무너지면 너무 아쉽지 않겠나. 우리의 실력으로 쟁취한 메이저대회 여정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고 싶다”는 박 감독의 바람이 이미 통하고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