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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美에 최후통첩 가능성…김영철 특사 방미 막전막후

입력 | 2019-01-21 13:48:00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지난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왜 만났을까. 한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중을 담은 친서 전달이 주목적이었다.

그런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점은 김영철 부위장의 방미가 알려지기 전부터 널리 논의되던 내용이었다. 따라서 북미 양국이 2차 회담 개최에 최종 합의하기 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한 의사를 전달하고 다짐을 받기 위해 김영철 부위원장을 특사로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중대한 의미가 없는 친서라면 굳이 특사를 보내 전달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특사를 통하지 않고도 뉴욕채널 등을 통해 친서를 여러차례 주고 받았다.

이와 관련해 일부 분석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주목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완곡하게 표현됐지만 ‘새로운 길’은 위협 내지 경고의 표현이다. 미국이 북한의 선의적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 즉 제재 완화 내지 해제를 하지 않으면 북한은 지난해 6월 1차정상회담 이후 유지해온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노력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이 분명한 것이다.

따라서 김영철 부위원장이 전달한 친서와 김영철이 전한 구두 메시지는 일종의 ‘최후통첩’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이런 분석에 따르면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미국이 ‘비핵화 이전에 제재완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뜻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면전에서 직접 전하기 위해 특사를 보낸 셈이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최후통첩을 하면서 강경한 입장만 천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20일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8일 시진핑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과감한 비핵화조치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위 분석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김정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비핵화협상의 마지막 결단처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미국에 제시하고 미국 측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겠다, 그런데도 미국이 여전히 호응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길’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친서에 담았을 내용이다. 이처럼 중대한 내용이기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김영철 특사를 통해 설명하고 답을 하겠다는 것이 굳이 특사를 보낸 이유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일부 있다. 김영철 특사의 방미 소식이 보도된 뒤부터 김영철이 베이징발 워싱턴행 비행기편을 예약하고 탑승한 뒤 워싱턴에 도착할 때까지 미국은 김영철 특사가 미국에 온다는 소식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또 지난 5월의 김영철 특사 방문 때와 달리 그의 움직임 전체를 극비리에 진행했다. 전 세계적 관심사에 대해 미 정부가 이처럼 철저히 침묵을 지킨 것은 거의 전례가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다.

외교소식통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이 김영철 특사를 마지못해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초 미국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최선희 외무성 부상 사이의 실무회담부터 해보자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를 보고 2차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결정하려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소식통은 15일까지도 비건-최선희 회담이 스웨덴에서 열린다는 건 확정됐었지만 김영철 특사가 미국을 방문하는 것은 확정되지 않았었다고 전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해 8월 취임한 이래 한미 워킹그룹회의를 통해 북한 비핵화 로드맵을 작성했고 이 내용을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한 상태였다. 이 로드맵은 ‘비핵화 이전에 제재해제 없다’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세부 이행계획을 제시하지 않던 미국이 처음 마련한 ‘실행계획’이다.

이를 비건-최선희 회담을 통해 북한에 전달하고 북한의 반응을 본 뒤 2차 정상회담에 나설 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특사부터 만나 달라고 하자 ‘최후통첩’을 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눈치채고 회피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비건-최선희 실무회담과 김영철 특사 접수를 두고 북미가 벌인 실랑이는 두가지 모두를 실행하는 것으로 정리된 셈이다. 이에 따라 김영철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고 직후에 비건 특별대표가 급히 스웨덴으로 날아가 최선희 부상과 회담을 하고 있다.

미국은 비건-최선희 회담을 당초 17일로 예상했는데 북한이 김영철 특사를 받지 않으면 비건-최선희 회담도 하지 않겠다고 해 어쩔 수없이 응한 것으로 보인다. 비건 특별대표가 19일 서둘러 스웨덴으로 날아가 최선희 부상을 만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선희 부상은 진작에 15일 베이징으로 나와서 기다리다가 김영철 특사의 미국행이 확정된 17일에야스웨덴으로 향했다.


트럼프대통령이 김영철 특사를 만난 뒤 진행되는 일들에서도 이례적인 대목이 일부 나타난다. 미국은 특사를 만난 직후 세라 샌더스 대변인이 “2월말에 2차 정상회담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격식과 절차가 중시되는 외교안보 사안조차 거리낌없이 떠벌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신중해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흔들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너스레를 떤 일은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와 만난 뒤 일부 미 언론들이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승리했다’면서 회담 결과를 부정적으로 보도하자 이틀이 지난 뒤에서야 “회담이 좋았는데 언론이 나쁘게 보도한다”고 기자들에게 투덜거렸다.

이례적인 대목이 또 있다. 미국은 김영철 특사를 만난 직후 아마도 2월말에 2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며 장소는 이미 결정됐다고 밝혔다. 회담 날자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보안상 이유일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런데 북한은 김영철 특사를 보낸 일부터 2차회담을 하기로 했다는 것까지 관련 사실을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 김영철 특사가 아직 평양으로 귀환하지 않아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 결과를 보고하기 전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마도 2월말에 2차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잠정적인 표현을 쓰는 것도 김정은 위원장이 최종 확인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세라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2차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볼 때까지 제재와 압박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철 특사가 최후통첩성 통고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북미 간에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물론 단지 국내외 여론을 의식한 대외적 메시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북미간 이견을 반영하는지 아니면 여론무마용 메시지인지는 21일 또는 22일 김영철이 평양으로 귀환한 뒤, 그리고 스웨덴 비건-최선희 회담이 끝난 뒤, 북한이 보이는 반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김영철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날 가진 미 언론과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이행 과정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반드시 위험을 낮출 필요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했다”고 말하고 “이제는 비핵화 약속을 실행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가 기존에 해온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김영철 특사와 면담에 배석한 폼페이오 장관이 여전히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는 점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의 FFVD 강조 발언은 김영철의 방미를 계기로 북한 비핵화에 분명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말 ‘최후통첩’을 미국에 전했는지는 확인하기 쉽지 않다.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과 걸핏하면 1차 회담의 대성공이라면서 북한이 핵실험,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음을 자랑하는 것을 약점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

북미 핵협상의 주도권이 북한으로 기울 위험성이 있어 보인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