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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버의 한국 블로그]“젓가락질 잘한다”는 칭찬은 이제 그만

입력 | 2019-01-22 03:00:00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1월이 다시 돌아왔다. 2018년 지난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잘했는지, 올해는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살펴볼 시기다. 각 기업에서는 지난해 매출이나 수익 등을 사업결과보고서로 작성하고 올해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승인하는 시기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번에 스스로를 평가해본 뒤 ‘향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칼럼을 쓸 때도 역시 개선할 부분이 있었다.

동아일보에 매달 한국 블로그 칼럼을 연재한 지 벌써 3년째다. 인생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해프닝도 쓰고 한국 사회의 핫이슈도 언급했다. 사실 이렇게 많은 독자에게 직접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내게는 큰 특권이다. 특권이면서도 동시에 부담감도 늘 느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나를 비롯해 ‘한국 블로그’를 쓰는 필자 4명은 한국 독자에게 ‘한국에 사는 외국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외국인을 둘러싼 이슈에 논란이 많은 편이라 글을 쓸 때마다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함부로 외국인은 이렇다거나 영국 사람은 저렇다고 쓰는 것도 무책임하지 않은가 싶다. 물론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외국인들도 있겠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외국인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한국 블로그를 쓰는 필자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사회제도, 복지, 정치 환경 등이 제각기 다른 200여 개 나라에서 왔다. 이 때문에 이슈에 대한 의견도 저마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들의 한국 생활 경험담은 여기저기서 생각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다’는 뜻의 OinK(Only In Korea의 줄임말) 페이스북 페이지, 외국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들어가면 불법주차, 운전습관, 음주난동 등 한국 생활의 불편과 애로사항에 대한 언급들이 있다. 한국에 갓 온 외국인 ‘신참’들이 어이없는 일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면 나같이 한국에 오래 산 ‘장기수(長期囚)’들은 위로나 조언을 해준다. 장기수들도 두 편으로 나뉜다. 한국을 비방하는 편과 옹호하는 편. 그런 일들을 많이 봤기에 글을 쓸 때도 항상 조심한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온 뒤 한국의 문화나 정책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국이 잘못됐고 한국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유행한 신조어 중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말이 있다.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친 말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의기양양하게 아는 척 설명한다는 뜻이다. 나는 한국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의 태도를 ‘한스플레인(한국+맨스플레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외국인들이 마치 한국을 잘 아는 듯 한국인에게 의기양양 말하는 태도. 내가 보기에 이는 문화 제국주의다. 나는 앞으로 문화 상대주의적인 시각에서 생각하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국 생활을 한 지 15년이 넘었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말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국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이런 점들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글을 쓸 계획이다. 독자 여러분께도 부탁이 있다. 가끔 해외의 좋은 사례를 글에 소개하고 한국이 벤치마킹하길 바라는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때 내게 ‘외스플레인(외국인+맨스플레인)’ 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시하는 말투로 “한국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다는 댓글은 상처가 될 것 같다. 나는 일상에서도 “김치를 좋아하냐” “독도를 아느냐” 등의 질문을 하루에 몇 번씩 받는다. 이런 질문들은 조금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식사 때마다 내 젓가락질을 한국인들이 칭찬하는 것도 사실 듣기에 기분이 좋지 않다. 나만큼 한국 생활 했으면 그 정도는 기본이다.

이러한 결심을 바탕으로 새해에도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 생활을 재미있게 글로 풀어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