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최근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의 ‘감성적 표현 컴퓨팅 처리’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이론상 1만6384개(2의 14제곱)의 얼굴 표현 방식을 갖는다고 한다. 얼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14가지 특징을 갖는다는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 오하이오대에서 진행했다.
여기서 질문. 그렇다면 어떤 얼굴 표정이 문화를 초월하여 사용되고 있을까? 감정 표현과 방식들은 얼마만큼 다른 문화권과 소통될 수 있을까?
연구진은 영어를 포함해 5개 언어별로 100개씩, 총 500개 샘플 이미지를 분석했다. 특히 연구진은 컴퓨터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일부에 직접 이름을 붙이고 분류해 정확도를 높였다.
결과는 연구진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문화와 지역을 초월해 통용되는 표정은 35개뿐이었던 것이다. 이 표정들은 감정의 호불호와 분류 차원에서 일관성을 보였다. 하지만 각성과 공감의 정도 차원에선 일관적이지 못했다.
반면 이 가운데 단 8개의 표정은 특정 문화권(1, 2개의 언어권)에서만 사용됐다. 이 표정들은 감정의 호불호와 각성 및 공감의 정도 차원에선 일관성을 보였다. 하지만 감정이 분류되는 차원에선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분노하는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이해되지만 얼마나 분노했는지 혹은 일부러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무뚝뚝한 포커페이스는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혹은 얼마나 그런 것인지는 일본인들에게 이해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그 본심을 파악하긴 어렵다.
흥미로운 건 이 35개 중 행복만이 다른 감정에 비해 더 많은 얼굴 표현의 가짓수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행복은 환호, 기쁨, 만족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 특히 행복한 얼굴 표정은 얼마나 크게 웃는지 혹은 눈가의 주름이 얼마만큼 생기는지에 따라 판가름 났다. 행복은 총 17개 표정으로 압축됐다. 혐오는 단 1개의 주요한 얼굴 표정만 나타났다. 공포를 나타나는 데에는 3개, 놀람은 4개, 슬픔과 분노는 각각 5개의 얼굴 표현이 사용됐다.
즉, 행복감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른 감정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행복은 사회적 유대감으로 작용하며 복잡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표정들이 필요하다. 반면 혐오는 단지 혐오만을 나타날 뿐이다.
연구에서 주목할 사실은 이 표현들에 대한 해석의 정확도가 22%부터 89%까지 다양했다는 점이다. 이번 연구 결과의 의미는 실험실에서 진행된 표정 짓기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생활에서 드러낸 감정과 표현들을 분석했다는 데 있다. 물론 사진과 비디오를 기반으로 했지만 말이다.
분명한 건 전 세계 약 77억 명의 미묘한 감정과 표정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확실한 점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표정은 어떤 식으로든지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중 행복은 인간이 가장 선호하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행복은 더욱 규정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