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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손에 쥔건 25만원뿐… 또 드러난 월세방 모녀의 비극

입력 | 2019-01-22 03:00:00

‘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지났지만… 취약계층 복지사각 여전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반지하 주택에서 박모 씨(당시 61)와 그의 큰딸(36), 작은딸(33)이 숨진 채 발견됐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명 ‘송파 세 모녀’ 사건이었다. 이후 서울시는 위기 가정을 찾아다니는 인력을 자치구마다 배치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복지서비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정을 찾아내고 지원해 ‘제2의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막자는 취지였다.

송파 세 모녀가 서랍장 위에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놓고 눈을 감은 지 5년이 지난 이달 3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또 한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 주택가의 한 반지하 월세방에서 김모 씨(82)와 딸 최모 씨(56)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은 모녀가 이사를 가기로 돼 있던 날이었다. 이사 당일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집주인 배모 씨(73)는 경찰에 신고했다. 열쇠공을 불러 반지하 월세방으로 들어간 경찰은 모녀가 각각 안방과 작은방에서 숨진 채 누워 있는 것을 확인했다.

8일 전인 지난해 12월 26일 딸 최 씨는 집주인과의 통화에서 “반지하이긴 했지만 창문 틈으로 햇빛이 들어와 참 좋았다”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모녀의 사인이 질식사로 보인다는 1차 소견을 내놨다. 경찰은 외부인 침입 흔적 등 여러 사정을 확인한 결과 타살 정황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경찰은 동반자살에 무게를 두고 있다.

모녀는 33m²(약 10평) 남짓한 반지하 집에서 15년간 단둘이 살았다. 동네에서 모녀를 아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았다. 딸은 대학 시절부터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모녀와 같은 건물 1층에서 1년을 산 50대 남성은 “집을 많이 들락날락하는데 그런 분들이 사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인근 주택, 미용실, 슈퍼마켓, 약국 등에서도 두 모녀를 안다는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김 씨에게는 수년 전 세상을 뜬 큰오빠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자매가 있지만 연락하고 지내던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김 씨의 막냇동생(65)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조카(최 씨)가 대학 때부터 대인기피증을 심하게 앓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조카는 누나(김 씨)가 다른 형제들과 연락하는 것도 막아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며 황망해했다.

김 씨 앞으로 지급된 노인 기초연금 25만 원 외에 이들이 받은 정부 지원금은 없었다.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양능력이 없고 소득인정액이 기준 이하인 가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모녀의 소득 수준을 파악할 수 없었다. 모녀가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금융거래정보 제공 동의서 등 소득 열람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망우3동주민센터 관계자는 “모녀가 지원을 요청하거나 인근 주민이 알린 적이 없어 사정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민센터에서는 공과금이 체납된 가정을 위기가구로 지정해 방문 조사를 하고 소득 수준에 따라 생계비, 주거비 등을 지원해 주기도 하지만 모녀는 이 같은 지원 대상에서도 비켜갔다. 모녀는 공과금을 체납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최 씨는 월세방 보증금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집주인 배 씨에게서 돈을 빌려 생활비를 충당했다.

김 씨는 중랑구보건소에 설치된 치매안심센터에도 등록돼 있지 않았다. 보건소 측은 “중랑구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6만2000여 명인데, 일일이 집집마다 방문할 수는 없다. 직접 찾아오지 않으면 도와드릴 길이 없다”고 했다.

한성희 chef@donga.com·김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