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시절 일본 측 고위 인사가 청와대를 방문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을 언급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더구나 우리 정부와 사법부는 일본 측 ‘으름장’에 부응해 강제징용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거나 결론을 바꾸려 하는 등 ‘맞장구’를 친 정황이 속속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확인하고,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구속영장에 이를 적시했다.
특히 일본 측 인사로 참여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특히 박 전 대통령에게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의 전직 고위 인사가 우리 나라의 대통령에게 특정사건 재판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라는 평가다. 일본 측 기업이 피고로 있는 사건에 대해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일본 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게끔 조치를 취하라고 압박한 것인데,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모리 전 총리의 발언 중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발언은 상당히 주목된다. 행정부인 청와대가 나서서 법원 재판에 개입하라는 요구인데,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충격적인 것은 우리 측 대응이다. 모리 전 총리 등 한일현인회의와 박 전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정부와 사법부에서는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주무부서였던 외교부에서는 일본 측 요구에 오히려 머뭇거리며 주저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오히려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앞서 청와대와 외교부는 2013년부터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해달라거나 정부 의견 개진 기회를 달라는 등의 요구를 법원행정처에 했고, 재판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었다. 행정처는 외교부의 의견 기회 제공을 위해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민사소송규칙까지 개정하기도 했다.
사법부가 행정부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재판에 대해 선고 기일이 늦춰지거나, 전원합의체 회부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검찰은 당시 행정처가 이같이 대응한 것은 상고법원 도입 추진 등이 원인이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 최고 역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정부의 편의를 봐주고, 이에 대한 대가를 얻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미 당시 사법부가 박 전 대통령 청와대 국정운영에 ‘최대한’ 도움을 주려 했다는 정황은 다수 드러난 바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법원에서 진행된 3차례 조사에서도 박 전 대통령이 관심을 두고 있었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댓글 조작 사건, 가토 타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형사사건 등에 대한 언급이 수차례 적시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 지칭)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등의 문건에서는 당시 행정처가 청와대와의 긴밀한 협조 관계를 통해 상고법원 추진에 정부의 힘을 기대하는 취지의 문구도 다수 적힌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일제 강제징용 재판 개입 등과 관련해 당시 사법부가 견지해야 할 독립적, 독자적, 중립적 사법권 행사는 청와대 권력과의 관계에 ‘도구’로서 사용된 것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