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실질심사 사법농단, 재판 거래에서 개입으로 축소 재판 개입 혐의마저 불법 되는지 의문 뒤늦게 드러나는 사익추구적 재판 청탁… 이것이 사법농단 수사 핵심 됐어야
송평인 논설위원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한일 관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그 파장 자체가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음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한일청구권협정의 당사자인 정부로서는 당연히 전원합의체 회부를 요청할 수 있었던 사안이다. 우리나라 대법원 규칙에 정부가 법원에 의견을 표할 절차가 있었느니 없었느니 따지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인 논리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소수의 사건만 상고를 허가해 전원합의체로 판결을 내린다. 우리나라는 모든 사건의 상고가 가능한 대신 상고사건은 일단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小部)에서 다루고, 소부에서 전원일치가 되지 않거나 특별히 중요한 사안일 경우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
미국 연방대법관들은 매주 금요일 열리는 대법관회의에서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대법관회의가 끝난 후에도 의견이 다른 대법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로 메모를 주고받는다. 밥 우드워드 기자는 ‘지혜의 아홉 기둥’이란 책에서 “얼 워런 대법원장은 회의에 들어오기 전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과 만나 작전계획을 짜고 회의 중에도 담합하기 일쑤였다”고 썼다. 대법원 재판은 상호 의견 제시와 교환이 필수적인데 우리는 너무 경직되게 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사건의 일본 기업 측 변호사를 만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 우드워드 책에는 워런 버거 대법원장 시절 한 변호사가 재심청구를 위해 자신의 딸이 재판연구관으로 있는 대법관과 자신과 같은 아일랜드계의 대법관을 만난 일화가 나온다. 두 대법관은 변호사가 사건을 언급하자 사무실에서 쫓아낸 것으로 나오지만 그 접촉으로 인해 문제의 재심청구를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그 접촉은 재판관이 사건에서 스스로를 회피해야 할 문제나 윤리 위반의 문제로만 다뤄졌을 뿐이다.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에 대한 개입이란 “인용이든 기각이든 국정감사 기간인 만큼 선고를 연기해 달라”는 것이다. 판결은 2개월여 연기됐다. 제프리 토빈 기자가 쓴 ‘더 나인’에는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 시절 그가 대법관회의에서 검토할 상고허가신청서 목록에서 사건을 빼버림으로써 시간을 끄는 얘기가 나온다. 원칙적으로 그런 개입도 하지 말아야 하지만 본안(本案)도 아닌데 불법으로 걸고넘어질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한 정보 수집에 대해 헌재 관계자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파견은 헌재와 법원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이며 그 자신도 모르는 헌재의 찬반 결정까지 파견 법관이 미리 알 방도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공보비를 예산에 쪼들리는 법원장에게 나눠준 것은 항목을 어떻게 책정하느냐의 기술적인 사안이다. 특정 판사 불이익 처분에 대해서는 이른바 사법농단의 발단인데도 지금까지도 뚜렷한 게 없다. 문제가 있다면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 자체에 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은 지인의 사건을 자신의 소부로 끌고 왔다고 한다. 대법원의 사건 배당은 기계적인데 어떻게 끌고 왔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검찰은 이제야 핵심에 도달했다. 사익추구적 재판 청탁이 사법의 신뢰를 흔드는 본체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있을지 모른다. 검찰은 스스로도 불법인지 아닌지 잘 모르는 분야에서 불법몰이에 헛심 쓰지 말고 명백한 불법이나 속 시원히 밝혀 보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