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7월 구성된 서울대 의대 비전 추진단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 의대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이런 노력은 서울대만 하는 게 아니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건축, 정치,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구성된 ‘병원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앞으로 종합병원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올해 종합병원의 경쟁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 초 개원을 준비하거나 증축하는 종합병원만 4개다. 이화의료원은 다음 달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이대서울병원을 개원한다. 이 병원에는 4∼6인실이 없다. 중환자실은 모두 1인실이다. 수술실은 버튼 하나로 모든 의료기기가 움직인다. 개원준비단에는 30, 40대 젊은 교수 2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4월 개원을 앞둔 은평성모병원은 모든 병동 입구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한다. 내과, 외과 구분 없이 여러 과들이 함께 움직이는 다학제 진료 시스템을 가동한다. 이 병원 역시 개원을 준비하면서 젊은 교수 30여 명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차관급으로 격상된 질병관리본부장을 처음 맡은 정기석 한림대의료원장이 최근 재단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정 의료원장은 질병관리본부장 시절 소두증을 일으키는 지카 바이러스 확산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당사자다. 그런데 정 의료원장이 해임된 상황을 들어보니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두 달 전 사건으로 지금까지 직무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해 11월 한림대 의료진 80여 명은 충남 안면도에 있는 한림대의료원 연수원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30, 40대 젊은 교수들로, 이 자리에서 병원의 발전 방향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당시 신선한 제안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5개 병원별 발전전략과 융합연구를 위한 공동연구체 발족 제안, 중앙임상의학연구소의 활성화 방안 등 여러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자연스럽게 다른 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의료진 처우 개선 문제도 나왔다고 한다. 시설 투자 요구도 이어졌다. 병원 행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이 자리에 참석한 재단의 고위 인사는 갑자기 1박 2일 워크숍을 취소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정 의료원장의 직무가 정지됐다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는 “한림대가 아무래도 다른 병원보다 지원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며 “결국 워크숍에서 경영을 총괄하는 재단 인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일로 의료원장 직무를 정지하고 해임 조치까지 내린 것은 황당하다”고 했다.
신기한 것은 젊은 교수들이나 노조가 ‘부당 인사’에 항의하고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릴 만도 한데, 실상은 정말 조용하다는 점이다. 의료원장을 단칼에 잘랐으니 교수들은 물론이고 직원들이 조용한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병원이 발전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비판을 적극 받아들여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기본이 아닐까? 최근 한림대의료원은 ‘위로(慰勞)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의료원장 전격 해임을 보니 말 못할 고민이 있어 보이는 정 의료원장을 비롯해 의료진, 직원들에게 위로가 필요해 보인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