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제는 북한 주민들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소식과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과 확연하게 차이 나는 김정은 시대의 사상 교육 시스템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태헌 경희대 국제학과 4학년(아산서원 14기)
이태헌님, 안녕하세요? ‘김일성·김정일과 확연히 차이 나는 김정은 시대의 사상 교육 시스템’이 있는지 질문 주셨네요. 흥미로운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북한의 사상 교육은 학교, 직장, 농장, 기업소(공장), 작업현장 등 다각도에서 진행되는데, 책임은 노동당의 선전선동부가 맡습니다. 먼저 최고지도자가 선전선동부나 당중앙위원회 일꾼들을 대상으로 대화, 담화, 서한 등의 형식으로 지침을 내립니다. 그러면 선전선동부의 이데올로그들이 지도자의 발언내용을 정리해서 선전선동부 산하에 있는 출판보도기관, 예술단체, 교육기관에 내려 보냅니다. 철저한 하향식인 셈이지요.
문학예술단체를 예로 들면,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선전선동부의 하달을 문학예술을 총괄하는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정론을 통해 발표하면, 각 분과(연극, 영화, 음악, 무용, 미술 등)에서 이론가들은 창작방법론을 제시하고, 실천가들은 작품을 창작해냅니다. 몇 번의 검열을 거쳐 작품이 통과되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고, 일반 대중은 관람과 모방공연을 통해 최고지도자의 지침을 체화해나갑니다. 2019년 ‘국기’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도, 이 과정을 거쳐 각 도에 있는 당위원회가 수만 명의 선동원을 통해, 시와 군의 기업소(공장), 건설 현장, 예술단에 이 노래를 보급했습니다(노동신문, 2019년 1월 14일자). 이 시스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시대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죠. 김정은 시대의 ‘확연히’ 다른 시스템을 기대하셨는데, 조금 실망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교육 시스템은 동일해 보이지만, 교육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사상교육에서 변하지 않는 주제는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인데, 김정일 시대에는 이 주제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교육했습니다. 북한의 문학예술은 사상교육의 최고 도구라 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김정일 시대의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주인공 강옥은 “자신보다 집단을 먼저 생각하라”는 최고 지도자의 지침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비단옷을 팔고, 그 돈으로 먹을 것을 마련하여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화성의숙에서의 한해여름’에서 은단은 김일성을 위해 총을 대신 맞고 죽고, ‘그는 대학생이였다’의 순금은 동료를 위해 폭탄으로 자폭하며, ‘고요한 전방’의 리명은 아들이 일에 방해되자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들을 동생에게 강제로 맡깁니다.
먹는다는 것, 산다는 것, 핏줄이라는 것이 생물학적·문화적으로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라면, 김정일 시대에는 이 기본적 욕망도 최고지도자를 위해 희생하라고 사상교육을 진행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양상이 김정은 시대에 살짝 변화를 보입니다. 물론 김정은 시대에도 최고 지도자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는 수사는 계속됩니다. 예를 들어 김정은 시대의 영화 ‘폭발물 처리대원’에서는 최고 지도자를 위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메고 산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매직 아워(태양이 밤에 이 세상을 넘겨주기 직전이라는 촬영기사들의 용어)를 사용하여, 희생하는 주인공을 금빛 후광으로 둘러싸이게 해서 숭엄함을 극대화시키고 있죠. 최고지도자를 위해 선택한 죽음을 미화시키는 거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 시대 텔레비젼 드라마 ‘기다리는 아버지’입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경상유치원인데, 피아노 신동이 경상유치원의 뛰어난 환경으로 세계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영화 곳곳에는 경상유치원의 교육시설, 문화시설, 창천거리의 아파트가 배치되어 김정은의 업적과 인민사랑을 살며시 홍보하죠.
드라마의 주인공 피아노 신동은 김정일 시대처럼 자신의 꿈을 집단을 위해 희생하지 않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일에 바빠 자신을 돌보지 않지만, 주인공은 경상유치원을 꼭 다시 방문하겠다는 김정은의 약속을 기억하며 피아노 연습에 전념하여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 1등을 합니다. 김정은 시대의 영화는 주인공이 사적 아버지보다 공적 아버지인 김정은을 우위에 둠으로써 자신의 꿈을 이루는 서사를 통해, 김정은을 따를 때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죠. 이것이 사상교육에서 김정은 시대가 김정일 시대와 확연히 다른 면이 아닐까요? 이제 북한은 사상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이전처럼 북한 주민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북한 주민의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지 않습니다. 욕망은 억누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밀도 있는 형태로 응축되니까요. 다시 정리하면, 김정은 시대의 사상교육은 이제 억압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 실현과 향유를 매개로 진행된다고 하겠습니다.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북한 차세대의 의식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겠죠. 감사합니다.
김정수 통일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