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이끌어 낸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무엇이었을 지 관심이 쏠린다.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업무수첩,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라 불리는 ‘물의 야기 법관’ 문건 등이 거론되고 있다.
24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7개월여간의 수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각종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했다.
먼저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도 쟁점이 됐던 이 전 상임위원의 수첩이 핵심 증거로 꼽힌다. 해당 수첩에는 이 전 상임위원이 헌법재판소 동향 수집 및 내부 정보 유출 등과 관련해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한 내용 등이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김앤장 법률사무소 관계자와 만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 개입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조사된 문건도 중요 증거로 거론된다. 해당 문건은 지난 2015년 5월부터 10월까지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기업 측을 대리하고 있던 김앤장 한모 변호사와 서울 소재 식당 등에서 수차례 만나 재판과 관련해 논의한 내용이 적힌 것으로 파악됐다.
법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문건으로 인해 당시 만남이 단순히 친분으로 인한 게 아니었다는 게 입증됐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당시 최고 역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 추진 등을 위해 박근혜정부 청와대에 편의를 주고자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정부 관심 사안이었던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 개입을 위해 사법부가 소송 피고인 일본 기업 측 대리인과 긴밀한 유착 관계였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김앤장 측의 독대 문건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사법행정 및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판사들의 명단을 관리한 ‘물의 야기 법관’도 핵심 증거다. 이 문건에는 6년간 30여명의 판사들이 사법행정 반대 등의 이유로 이름을 올렸고, 인사 조치 등이 검토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이 문건을 보고 받고 특정 판사들을 최선호 법원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등 인사조치안에 직접 ‘V’자를 표시하거나 결재한 사실을 확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부당한 인사를 직접 승인했다는 결정적인 정황이 된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의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 중 핵심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상당 부분 입증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가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