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명의 대통령’ 극심한 혼돈 트럼프 “민주주의 되찾게 모든 제재”, 남미우파-EU의회도 과이도 지지 쿠바 등 좌파정권은 마두로 엄호… 러 “美, 색깔혁명 조작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둘로 나뉘어 갈등 확산… 마두로 “美외교관 72시간내 떠나라”
한 나라 두 대통령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가운데)이 23일 수도 카라카스 동부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정권 강탈을 끝내기 위해 과도정부 대통령을 맡겠다”고 선언하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마두로 대통령(아래쪽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도 이에 맞서 카라카스 북부 대통령궁 연설에서 “과이도 지지를 밝힌 미국과 단교한다. 미국은 꼭두각시 대통령을 앞세운 국정 개입을 멈추라”고 선언했다. 카라카스=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 백악관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마두로의 폭정에 용감히 맞서 자유와 법치를 요구하고 나섰다”며 “미국 정부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36)을 베네수엘라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앞서 같은 날 과이도 의장이 수도 카라카스 동쪽 지역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연단에 올라 “(마두로의) 정권 강탈을 끝내기 위해 과도정부 대통령을 맡겠다”고 선언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이도 지지’를 발표한 직후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과 단교한다”며 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날 카라카스 북부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밖에서 가진 연설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72시간 안에 모든 미국인 외교관은 이 나라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이어 마두로 대통령은 “의리 없는 미국인들은 원유, 가스, 금광을 갖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치에 끼어들려 한다. 꼭두각시 대통령을 내세우려는 미국 제국주의 정부의 군사적 개입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과도정부 대통령’을 자임하며 신예 무명 정치인에서 단숨에 베네수엘라 정치 무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과이도 의장이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 출신의 ‘미국통’임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실각한 대통령이 미국과의 단교를 결정할 수 없다. 베네수엘라 군인들은 마두로의 요구를 무시하라. 그곳의 미국인들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응수했다.
과이도 의장은 2007년 24세 때 우고 차베스 정권의 방송 장악에 반발해 일어난 학생운동 지도자로 정치권에 투신했다. 2년 뒤 젊은 정치인들과 함께 ‘대중의 의지’라는 정당을 창당해 2011년 보궐로 의회에 입성한 뒤 2016년 북서부 바르가스주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변수는 베네수엘라 국정 문제에 관해 미국과 대립해 온 러시아다. 안드레이 킬모프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 부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또 다른 ‘색깔 혁명’을 조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깔 혁명’은 2000년대 구소련 지역 국가에서 연쇄적으로 벌어진 공산주의 붕괴를 일컫는 말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3일 카라카스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는 시민 수만 명이 모여 “마두로 퇴진”을 외치며 행진했다. 61년 전 이날 베네수엘라에서는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 독재 정권이 대중 봉기로 무너졌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