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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구]인플루엔자와 환각

입력 | 2019-01-25 03:00:00


23일 일본 도쿄의 한 전철역에서 인플루엔자(독감)에 걸린 30대 여성이 선로에 떨어진 뒤 열차에 치여 숨졌다. 심하게 기침을 하던 중 갑자기 비틀거리면서 추락했다고 한다. 바로 전날 사이타마현에서도 독감에 걸려 집에서 쉬던 초등학생이 아파트 3층에서 떨어져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독감으로 인한 신경이상 증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염병 전문가들에 따르면 독감에 걸리면 뇌의 질병이나 신경합병증으로 인해 환각이나 이상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 이상증상에는 갑자기 달리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흥분해서 창을 열고 뛰어내리려 하거나 같은 자리를 맴도는 모습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늦가을부터 지금까지 이런 증상이 100여 건 보고됐다. 환자수가 200만 명을 넘어설 만큼 독감이 확산되는 데다 신경이상 증상 공포까지 겹쳐 일본인들의 일상생활까지 바뀌고 있다. 한 커플은 남자가 독감 진단을 받자 노트북 영상통화로 결혼식을 치렀고, 독감에 걸린 환자들에게 위로금을 보내주는 크라우드펀딩 앱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말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복용한 여중생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지면서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신경이상 증상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한 남성은 라디오 프로그램 건강상담에서 아들이 타미플루를 복용한 지 40∼50분이 지나면 어디론가 가곤 했는데 왜 그곳에 갔는지는 모르는 증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약과 이상증상의 관계는 연관 짓기 어렵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염병은 철저히 대비해야 하지만 과민 반응은 경계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발병 때 실제보다 사태를 더 키운 건 ‘공기로도 전염된다’는 식의 괴담, ‘낙타 고기와 낙타 우유는 먹지 말라’는 걸 예방법이라고 홍보한 정부의 안이한 대응, 무분별한 학교 폐쇄처럼 공포를 부추기는 과민·과잉대응이었다. 전염병 자체는 천재(天災)지만, 확산은 인재(人災)인 경우가 많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