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요즘 물고기를 놀잇감으로 삼는 축제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 지역에 서식하지 않는 물고기를 대량으로 풀어놓는 반(反)생태적인 축제라는 것이다. 물고기 맨손잡기 프로그램도 살아있는 생명체를 물건 취급하는 비(非)인도적, 비교육적인 행위라고 비판받는다. 물고기의 ‘집단 학살장’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물고기를 극심한 고통 속에 죽이는 것을 보고 즐기는 행위는 동물학대라는 것이다.
반면 먹기 위해 양식한 물고기를 풀어놓고 즐기는 축제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양식 사료용 혹은 통발이나 낚시 미끼로 사용하는 물고기는 불쌍하지 않고 유독 축제장의 물고기만 불쌍한 것이냐는 반론이다.
내 눈으로 본 생명체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전국시대 제선왕이 소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보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제물로 바치기 위해 간다고 하자 제선왕은 소를 놓아주고 양으로 바꿀 것을 명했다. 사람들은 소나 양이나 뭐가 다르냐며 비웃었다. 이에 맹자는 “왕이 한 일이 인(仁)의 실천이다.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우선적으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영화처럼 물고기에게 표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개와 고양이의 반열은 아니더라도 감정을 표현하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아서 죽게 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얼굴 근육을 움직여서 아파하거나 기뻐하는 표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물고기의 잘못이겠는가. 영화에서 호기심 많은 니모, 건망증이 심한 도리, 채식주의자 상어 브루스 등 개성 넘치는 물고기들처럼 실제 물고기도 고통, 기쁨, 유대감, 지능을 가진 생명체다. 살아있는 것을 존중하며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재미를 위해 고통스럽게 죽이지 말자는 시대적 요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심장이 뛰는 생명체를 함부로 하지 않는 사회는 아름답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