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으면 더 일찍 이야기했어야지!”
말은 쉽습니다. 현실은 어렵습니다. 피해자는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오로지 해 온 일에서 쫓겨날 두려움, 가족이 알면 받을 충격……. 현실의 이유를 떠나 마음 깊이의 움직임을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 강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범인들은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했습니다. 범인들과 인질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풀려난 인질들은 법정 증언을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돈을 모아 구속된 범인들의 변호를 도우려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역설적인’ 현상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분석했고 이후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불립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을 논할 만한 다른 사건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미국 언론 재벌의 손녀가 테러 조직에 잡혀서 동화돼 범죄를 저지르다가 감옥에 간 사건이었습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을 정신분석 용어로 바꾸면 넓은 의미에서 ‘공격자와의 동일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프로이트의 헝가리 제자였던 페렌치가 제시한 개념으로 ‘마음의 상처를 예방, 방어하려는 방어기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가 제시한 공격자와의 동일화의 원래 의미는 공격자와 닮게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었던 며느리가 세월이 흘러 자신의 며느리에게 더 혹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신입사원 시절 상사에게 엄청나게 당했던 회사원이 위치가 올라가면서 ‘갑질 전문가’가 된다면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요. 상식으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며느리나 신입사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도와야 할 것 같은데요. 공격자와의 동일화로 설명이 됩니다.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식이 부모가 되면 자식에게 폭력을 쓸 가능성이 큽니다. 동일화란 결국 생존을 위해, 미워하다가 닮아가고 전해진다는 말입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과 행위를 닮으려고 애써야 그나마 무너져가는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공격자와의 동일화는 두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공격자를 닮아 같은 방식으로 공격적이 되는 면, 그것이 원래의 의미입니다. 의미를 넓히면 공격자의 입장에 공감해서 피해 경험 자체를 부정하는 면이 추가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스톡홀름 증후군입니다. 가해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돕는 쪽으로 가는 겁니다. 마음은 합리적 이성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학대 사실을 입증하라고 압박한다면 합리적이 아닙니다.
학대의 경험에서 회복하려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회와 제도의 도움은 물론이고 깊게 가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정신분석가의 치료적인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잘못이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과도한 사회적인 관심은 부담이 되고 때로는 이차적인 피해를 줍니다.
최근 돌아가는 형세를 보면 시청자나 구독자에게 정신적인 부담을 주는 데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논쟁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적폐 청산의 주체와 대상이 이제 서로 역할을 바꾸는 듯 보입니다. 공격하던 편이 수비에 치중하고 수비에 시달리던 편이 공격하기 바쁩니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미워하다가 결국 닮아가는 현상이 점차 드러납니다. 사람은 다 비슷합니다. “우리는 전혀 다르다”고 서로 강하게 부정하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지닌 한계를 알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그저 겸손하게 조금씩 노력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오늘도 공격자와의 동일화는 세상살이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멀리서 페렌치가 빙긋 미소 짓는 것 같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