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초유 전직 사법수장 구속]양승태 구속 수감… 박병대는 기각
○ 자충수 된 “모함” “왜곡” “조작” 주장
두 번째 구속영장도 기각된 박병대 전 대법관이 24일 오전 2시 50분경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검찰은 지난해 11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압수수색해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집무실에서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를 만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지연을 상의한 대화 내용이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 대법원장이 집무실에서 소송 대리인을 독대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대리인에게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 등을 알려줬다는 게 법조계에선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한 변호사를 만난 것은 맞지만 소송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한 변호사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 부장판사의 업무수첩에 적힌 지시사항 옆 ‘大’가 양 전 대법원장을 의미한다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나중에 조작된 가능성이 있어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대응했다.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 문건 중 특정 법관 이름 옆의 ‘V’ 표시에 대해서는 “기계적으로 표시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영장심사에서 이에 배치되는 전·현직 판사 다수의 진술과 객관적 물증을 확인한 명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법원 안팎에선 양 전 대법원장이 영장 심사를 맡은 25년 후배 영장전담 부장판사 앞에서 후배 법관들의 진술을 왜곡이나 조작이라고 몰아세운 것은 상식 밖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에게 불리한 후배 법관들의 진술을 전면 부인한 게 명 부장판사에게는 증거인멸 우려를 키웠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 박병대 영장 기각 이유는?
검찰 고위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모두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법원의 영장 발부 기준이나 원칙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선 법원행정처 업무 체계상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직보를 받는 게 일상화돼 있었기 때문에 박 전 대법관은 구속이 안 되고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이 구속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원행정처 차장이 초안을 만들면 법원행정처장에게 의견을 물은 뒤 대법원장에게 직접 결재를 받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법원행정처장의 역할은 의견 제시에 그쳤다는 것이다. “나는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고 전 대법관의 검찰 진술도 같은 맥락이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