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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인간의 술에 대한 애착은 진화의 산물”

입력 | 2019-01-26 03:00:00

◇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조너선 실버타운 지음·노승영 옮김/295쪽·1만7000원·서해문집




“오늘부터 금주. 내가 어제처럼 또 과음하면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회식 다음 날 종종 이런 말을 듣지만 지킬 수 없는 말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인간이 술에 사로잡혀 사는 건 자연스러운 진화생태학적 현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에든버러대 진화생태학 교수인 저자는 인간이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을 의지박약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인류가 독소인 에탄올에 내성을 키워 알코올에 익숙해지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비소’ ‘스트리크닌’ 등 독소와 달리 익은 포도, 곡물 속 효모를 섭취하며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에탄올에 적응해왔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흔히 먹고 마시는 식재료가 어떤 진화과정을 거쳤는지, 인류가 이 음식을 왜 즐기게 됐는지 진화생태학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겨자 생강 고추냉이의 매운맛, 향신료의 자극적인 맛은 식물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화합물이다. 다른 생물에게는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 화합물은 인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저자는 “화학물질에 독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우리는 그 자극을 회피하기보다는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며 “독이 있으니 먹지 말라는 식물의 허풍에 속지 않으면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선택에서 선호된다”고 말한다.

책 후반에는 인류의 미래 밥상의 모습도 조심스레 내다봤다. 기후변화와 인구증가로 세계 인구가 100억 명에 이르면 식량이 부족해져 유전자변형작물(GMO)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다. 다만 지속 가능한 생산 식량으로서 GMO가 과소평가됐다고 지적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