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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수백 년간 여성 억압… ‘처녀성’이라는 판타지

입력 | 2019-01-26 03:00:00

◇우리는 처녀성이 불편합니다/조너선 앨런, 크리스티나 산토스, 아드리아나 슈파르 엮음·이혜경 옮김/384쪽·2만 원·책세상




요즘도 ‘처녀성’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여성기구 및 유엔인권사무소는 ‘처녀막 검사를 포함한 어떤 테스트도 여성의 섹스 여부를 검증할 수 없다’고 성명서를 냈다. 여전히 전 세계 최소 20여 개국에서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처녀성 검사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도 ‘처녀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단어를 검색해봤더니 국제결혼을 위해 배우자의 처녀성 검사를 원한다는 글이 나왔다.

이 책은 수백 년을 넘게 여성을 억압해 온 ‘처녀성’의 무의미함을 추적한다. 중세 로맨스 소설부터 발리우드, ‘트와일라잇’ 사가 등 최근 대중문화까지 여러 문화 현상 속에 나타난 처녀성의 문제적 특성을 파헤친다. 전통적 학문에서 배제되어 온 처녀성은 관행이자 이데올로기이며 종교적 신념에 가깝기에 비교문화의 맥락에서 고찰된다. 이 때문에 학술적 성격이 강하다.

실체가 없는 판타지에 불과함에도 끈질기게 일상에 남아 있는 ‘처녀성’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몸이 가부장적 정치체제 아래 통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불편한 억압에서 벗어나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몸의 주인은 나라는 걸 깨닫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