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벤처지원제 중복 가입하고 공모전 찾아다니며 떴다방식 영업 도전 대신 잿밥 노린 ‘늙은 벤처’도
A 씨(34)는 지난해 한 기술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퇴사했다. 기술 개발에는 뜻이 없고 여러 법인을 운영하면서 정부 보조금을 챙기려는 모습에 실망해서다. 해당 회사 대표는 이미 퇴사한 A 씨에게 최근 전화해 “A 씨 통장에 돈을 넣어뒀는데 내게 보내 달라”고 했다. 신규 채용에 따른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고 A 씨 통장에 ‘유령 입금’을 한 것이다.
한국의 벤처기업 가운데 2개 이상의 창업·벤처지원제도에 중복 지정된 기업이 1만 곳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개발과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기업은 적은 반면 정부 지원금만 챙기려는 ‘좀비 기업’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연구원 양현봉 선임연구위원은 25일 열린 한국창업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혁신성장 촉진을 위한 창업 벤처기업 정책과제’를 내놓았다.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지역 창업센터에 가면 프로젝트나 과제를 따내기 위한 목적으로 임시 사무실을 여는 ‘떴다방’식 업체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여러 공모전에 지원해 보조금을 받는 스타트업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투자 심사 과정에서 이런 ‘좀비 기업’을 걸러내야 한다”고 했다.
재정이 새는 가운데 벤처기업의 기술력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교수나 연구원 출신이 설립한 벤처기업 비중은 2007년 12.4%에서 2018년 7월 전체의 8.2%로 줄었다. 전체 창업기업 중 기술기반 기업 비중도 2015년 43.8%에서 2017년 43.3%로 소폭 감소했다.
국내 벤처기업의 업력은 2008∼2012년만 해도 평균 8년 정도였지만 2013년 이후에는 평균 9년으로 늘었다. 벤처기업으로 인증되면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벤처의 꼬리표를 떼지 않으려는 ‘늙은 벤처’가 많아진 셈이다.
도전정신이 생명인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도 부진한 편이다. 전체 벤처기업 가운데 수출 경험이 있는 기업은 전체의 25.9%에 불과했다.
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 / 신동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