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 커플]<4>디자이너 스티브J-요니P 부부
디자이너 부부 스티브J와 요니P가 18일 서울강남구에 있는 SJYP 브랜드 매장에서 포즈를취하고 있다. 재킷으로 비를 피하는 모습을 연출해달라고 부탁하자 부부는 잠시의 망설임도없이 분홍 재킷을 꺼내와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박영대 기자sannae@donga.com
“아니지, 운동도 같이 하잖아. 23.5시간이라고 해주세요.”(스티브J)
“운동은 이제 혼자 하면 안 되겠어?”(요니P)
이들을 만나기 위해 18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있는 SJYP 브랜드 매장을 찾았다. 1, 2층에는 부부가 운영하는 패션브랜드 매장이, 3, 4층에는 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이 있었다. 3층에 도착하자 진한 핑크색 셔츠를 입은 요니P와 연한 핑크색 스웨터를 입은 스티브J가 반갑게 맞이했다. 한성대 의상학과 96학번 동기로 만난 두 사람은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함께 다니고 있다.
―함께 오래 있다 보면 싸우지 않나요.
“(스티브J) 물론 지겹도록 싸워봤죠.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오랫동안 함께 살아서 서로가 없으면 허전해요. 출장이나 여행으로 떨어져 있을 때에도 수시로 전화해요. 이상하죠. 우리 둘 다 머리로는 자유를 갈망하는데 몸은 항상 같이 있네요.”
“(요니P) 대학교 때부터 ‘베프(베스트프렌드)’였어요. 재밌는 것을 보면 함께 장난치고 싶고 막 얘기하고 싶어요. 주위에선 분리불안 아니냐고 그래요.”
“(요니P) 스티브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어요. 저는 주로 교실 중앙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었고 스티브는 교실 뒤에 혼자 있었어요. 조용한 아이여서 더 궁금했죠. 제 눈에는 외모도 멋있었고요.(웃음)”
대학 동기였던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한 건 대학교 2학년이던 1997년 어느 날, 스티브J가 요니P의 손에 쥐여준 쪽지 한 장 덕분이었다.
‘동물원 갈래?’
종이에는 딱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다음 날, 요니P는 동물원 콘셉트에 맞춰 과천 서울대공원에 요란한 호피무늬 옷을 입고 나타났다. 스티브J는 “마치 표범 한 마리가 뛰어오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연인이 됐다.
두 사람은 영국 런던으로 동반 유학을 결심했다. 본격적인 학업을 시작하기 전 어학연수를 하며 두 사람은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다. 함께 있으면 영어가 늘지 않을 것 같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부모로부터 대학 입학금을 지원받은 스티브J와 달리 요니P는 학비를 모으기 위해 피시앤칩스 가게에서 감자를 깎았다.
이후 스티브J는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매퀸 등을 배출한 영국 패션스쿨인 센트럴세인트마틴스에 입학해 한국인 최초로 수석 졸업했다. 요니P도 런던패션대학에서 석사과정에 재학하던 중 영국 고급 브랜드 키사(Kisa)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됐다. 낮에는 패션쇼 준비로, 밤에는 학비 마련을 위해 두 사람 모두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리던 시기였다.
“(스티브J) 대학교 4학년 때 우리끼리 한 약속이 있어요. 세계적인 커플 디자이너가 되자며 첫 공동 브랜드도 등록했죠. ‘에이치스 요니(H‘s Yoni)’. 혁서의 요니라는 뜻이에요. 요니라는 가명은 제가 승연이를 ‘연이 연이’로 부르다가 ‘요니’로까지 발전한 거고요.”
“(요니P) 런던에서 공부할 때 우리는 서로를 ‘크리틱(선생님)’이라 불렀어요. 원래 친구끼리 평가할 땐 적나라하게 얘기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커 와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누구보다 솔직히 얘기해요. 비판하면 기분은 나쁘지만 오래가지 않고요. 누구보다 충고를 잘 받아들여요.”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있는 패션 브랜드 SJYP의 직영 매장. 현대백화점그룹 제공
“(요니P) 눈이 쌓인 한강의 배 위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결혼식을 준비했어요. 한국에 오자마자 너무 바빠서 웨딩드레스도 후다닥 만들었죠. 심지어 결혼반지도 없었어요.”
“(스티브J) 결혼식을 미니 패션쇼처럼 해보자는 생각만 했지 그에 걸맞은 준비는 못했죠. 결혼 전날 길에서 만난 친구에게 청첩장을 줄 정도였으니까요. 어차피 항상 같이 있었으니 결혼식은 정말 통과의례라 생각했어요.”
“(요니P) 부부는 돈이 없을 때 제일 많이 싸우죠(웃음). 우리도 브랜드가 안 되면 싸웠던 것 같아요.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인정받기 위해 창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왔는데 브랜드를 론칭하고 나니 이런 제품은 실제로 판매로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브랜드를 접어야 되냐 고민했었죠.”
“(스티브J) 그때 생각나? 어디서 돈을 빌려와야 하는 거냐며 싸웠던 거. 사이좋을 땐 ‘스티브야’ ‘요니야’ 하면서도 싸울 땐 ‘야 배승연’ ‘야 정혁서’ 부르면서 살벌하게 싸우죠. 그런데 우리가 싸우는 이유가 사랑이 식어서도 아니고 누가 바람을 피워서도 아니잖아요. 함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쳐 싸우는 거니까요. 브랜드가 잘되면 사이가 좋고 안 되면 힘들고 뭐 그런 거죠.”
“(요니P) 이런 걸 보고 ‘진짜 한배를 탔다’고 하는 거야.”
결혼만큼 두 사람의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은 2017년 일어났다. 시험관 아기 시술 세 번 끝에 부부는 누구보다 소중한 딸, 시안을 얻었다. 스티브J는 “엄마의 이마와 아빠의 인중을 골고루 닮았다”고 자랑했다. 20년 넘게 둘만 있던 부부에게 아이가 가져온 변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요니P) 둘이서 20년 넘게 있다 보니 항상 둘이 찍은 사진밖에 없고 차에 타면 일 얘기를 주로 했어요. 그런데 어느새 차 안에서 우리가 시안이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패션디자이너로 아이가 생기면 안주하게 되지 않을까, 더 이상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진 않을까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해요.”
“(스티브J) 가족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제까지는 커플이었잖아요. 혼인신고 하고도 아이가 없으니 뭔가가 비어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안이가 태어나니 진정으로 가족이 완성된 느낌이 들어요.”
두 사람은 주말만 되면 어김없이 시안이를 데리고 미술관을 다닌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더라도 서로의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 부부가 금실을 지켜나가는 비결이다. 요니P는 롤러블레이드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집 지하에 롤러장을 만들어줬다. 아무리 일이 바쁘고 육아에 지쳐도 서핑과 테니스, 여행 등의 취미를 공유한다. 요니P는 “아마 취미를 공유하지 않고 매일 패션 얘기만 했더라면 이렇게 사이가 좋진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요니P) 누구나 똑같을 거 같아요. 꿈을 공유하는 동반자죠. 확실한 내 편이자 누구보다 편한 내 짝꿍, 내가 원하는 모든 걸 해볼 수 있게 지지해줄 수 있는 절대적인 내 편이요.”
“(스티브J) 계속 진화하는 느낌이 있어서 좋아요. 혼자였던 내가 요니를 만나 디자이너가 되고 누군가의 남편, 아빠가 됐잖아요. 이제 아이가 한 명 더 생긴다면 그때의 나는 어떻게 진화할지 또 궁금해요.”
“(요니P) 스티브를 처음 본 게 스무 살이잖아요. 그때와 30세, 40세의 스티브가 다르죠. 배우자로서 한 사람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도 되고요.”
“(요니P)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네요. 다시 태어나면 스티브와 결혼할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다만 후회는 없어요. 스티브가 없었다면 지금의 요니는 없으니까요.”
“(스티브J) 요니가 그때 그랬잖아. 다시 태어난다면 더 예쁜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그러면 나를 만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면서.(웃음)”
● 스티브J-요니P 부부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