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슈퍼볼의 사회학
미국 역사상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마다 2월 첫 번째 일요일이면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을 들썩거리게 하는 슈퍼볼은 올해도 변함없이 그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챔피언결정전인 슈퍼볼은 2월 3일 오후 6시 30분(한국 시간 2월 4일 오전 8시 30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로스앤젤레스 연고인 LA 램스(내셔널 콘퍼런스 소속)와 보스턴을 연고지로 두고 있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아메리칸 콘퍼런스 소속)가 우승 트로피 주인을 가린다. 로스앤젤레스와 보스턴은 지난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도 맞붙었다.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가 류현진이 선발 투수로 출전한 LA 다저스를 4승 1패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두 도시의 ‘리턴 매치’로도 관심을 모으는 이번 대결은 단판 승부다. 미국 4대 프로스포츠 가운데 단 한 번 맞붙어 왕좌를 결정짓는 종목은 슈퍼볼뿐이다. 그만큼 짜릿하다.
○ ‘꿈꾸는 미국’이 필드에 있다
대학 리그도 프로 못지않은 인기가 있다. 미식축구 명문 미시간대는 수용 인원이 10만7000석이 넘는 자체 구장 ‘빅 하우스’를 가지고 있는데 경기마다 매진 사례다. NFL은 선수들이 반드시 대학을 거쳐 프로에 입단하도록 규정을 두고 있어서 대학 리그는 ‘미래의 NFL’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미식축구는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여서 인기가 높다는 분석도 있다. 공격과 수비를 전담하는 선수들이 각각 있고 그 안에서도 포지션별로 체격이나 특징이 천차만별인 선수들이 뒤섞여 뛴다. 상대 수비의 거친 태클을 버텨내야 하는 ‘센터’는 몸무게 100kg을 훌쩍 넘는 거대한 몸집과 엄청난 근육이 필요하지만 공을 들고 수비를 피해 달려야 하는 ‘러닝백’은 탄탄한 몸에 빠른 다리가 필수다. 작전에 따라 공격 루트를 구상한 뒤 패스로 활로를 뚫는 ‘쿼터백’은 순간적으로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는 능력과 높은 패스 정확도가 요구된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 사회를 보는 듯하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특성의 선수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교육에도 써먹고 있다. 미식축구 전문가인 박경규 경북대 명예교수는 “미국 학교에서는 어릴 때부터 미식축구를 가르치면서 ‘너의 장점을 잘 발전시키면 반드시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며 “다양성과 자유를 존중하고 차별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미국의 신념을 미식축구를 활용해 교육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을 가지고 수비를 밀어내며 영역을 넓히고, 상대 진영 끝에 있는 터치다운존에 공을 내리꽂아 점수를 내는 경기 방식은 실제 전선을 만들어 전진하고 깃발을 꽂아 점령하는 전쟁과 닮았다. 미국인들이 미식축구 경기를 보면서 ‘세계 최강 미국’이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해마다 이슈가 되는 하프타임 공연이나 기업 광고에서 미국의 사회상을 읽을 수도 있다. 올해 대결을 벌일 패트리어츠와 램스(당시 연고지는 세인트루이스)는 9·11테러가 일어났던 직후인 2002년 슈퍼볼에서도 맞붙은 적이 있는데, 당시 하프타임 무대에 오른 록그룹 U2는 대형 스크린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띄우며 노래했다. 관중은 눈물을 흘리며 공연에 열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反)이민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던 2017년 슈퍼볼에서는 공유숙박업체 에어비앤비가 ‘우리는 받아들인다(We accept)’는 주제로 다양한 인종과 국가 사람들의 얼굴이 등장하는 광고를 만들어 내보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 슈퍼볼에는 사상 처음으로 남자 치어리더(램스 소속) 두 명도 등장한다.
슈퍼볼은 단일 종목 경기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1972년 슈퍼볼 때 시청률 40%를 돌파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1990년 39.0%)을 제외하고는 4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미국에서 1억1000만여 명이 슈퍼볼을 본다. 미국 인구가 약 3억3000만 명이니 3명 중 1명은 슈퍼볼을 보는 셈이다. 월드시리즈나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결정전 시청률은 결승 팀에 따라 10∼20%를 오르내린다.
미국 티켓 검색 사이트 ‘시트긱’에 따르면 올해 슈퍼볼 입장권 가격 평균은 5239달러(약 590만 원)다. 이 정도 가격인 표를 사면 맨 앞자리가 아닌 중간이나 뒤쪽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암표를 구할 경우 정가의 5∼10배를 줄 각오를 해야 한다.
거금을 주고 슈퍼볼 입장권을 손에 쥔 팬들은 길게는 1주일 동안 숙박을 한다. 먹고 마시며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준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가 2015년 주도(州都) 피닉스에서 열린 슈퍼볼의 경제효과를 분석해 봤다. 슈퍼볼이 애리조나에 가져다준 돈이 7억1900만 달러(약 7910억 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왔다.
○ 최초의 ‘셧다운 슈퍼볼’ 보안 걱정
USA투데이는 21일 “올해 열리는 53회 슈퍼볼이 40여 년 만에 연방정부 셧다운 속에서 열리는 첫 번째 대형 프로 스포츠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연방정부 셧다운은 1976년부터 21차례 일어났다. 하지만 슈퍼볼 기간과 겹친 적은 없었다. 셧다운 기간에 열린 대형 프로 스포츠 행사는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1978년 월드시리즈뿐이다.
슈퍼볼은 연방정부가 두 번째로 높은 보안등급을 매긴 대형 행사다. 1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 다음으로 보안등급이 높다.
슈퍼볼 행사의 보안에는 연방수사국(FBI) 등 1500명 이상의 연방 보안인력이 투입된다. 연방정부 셧다운이 다음 달까지 진행될 경우 미국 전역에서 팬들이 집결하는 슈퍼볼 경기의 보안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방정부 관리들은 슈퍼볼 진행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타일러 홀턴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슈퍼볼과 같은 특별 행사의 보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우리는 이 행사를 위해 우리의 보호 책임을 수행할 것이며 지역 보안 파트너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슈퍼볼을 치러야 하는 애틀랜타는 걱정이 태산이다.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공항은 슈퍼볼이 열리는 기간에 하루 이용 승객이 최대 33% 증가하고 하루 750편의 항공기가 증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샤 보텀스 애틀랜타 시장은 “셧다운이 슈퍼볼 주말까지 이어질까 걱정스럽다”며 “특히 보안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슈퍼볼을 세계로”
슈퍼볼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개최지 선정은 지명 방식으로 바뀌었다. NFL 측이 적절한 개최지를 골라 협상하고 있다. 2월 초 날씨를 감안해 돔구장이 있거나 영상 10도 이상의 기후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앞으로 해외에서 개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금까지 미식축구는 갈라파고스 같은 존재였다. 미국을 제외하면 즐기는 나라가 거의 없었다. 메이저리그와 NBA,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 모두 있는 캐나다 팀도 NFL에는 아직 없다.
하지만 2006년 부임 후 2023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로저 구델 NFL 사무총장(커미셔너)이 세계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구델 사무총장은 2007년 ‘NFL 인터내셔널 시리즈’를 도입하고 영국 런던과 토트넘,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등에서 정규시즌 경기 일부를 열도록 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영국이다. 인터내셔널 시리즈를 시작한 뒤 영국에 미식축구 붐이 일었기 때문. 런던에서는 슈퍼볼을 유치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구델 사무총장은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팀을 만들고 2027년에는 시장 규모를 현재의 10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 규모로 확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