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셔레스트 공식 트위터 갈무리 © 뉴스1
암호화폐 시장이 근 1년째 하락세다. 대장주 비트코인의 가격은 지난해 1월보다 6분의 1 토막이 났다. 그러나 하락장에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생각하는 공매도가 아니다. 시장을 공부하고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찾아낸다.
이번주 국내 암호화폐 거래사이트 ‘캐셔레스트’에서 일어난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수의 투자자가 ‘땅 짚고 헤엄치기식’ 방법으로 차익을 거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비법은 ‘거래사이트 자체 발행 코인 지급 이벤트와 스테이블코인의 오묘한 조합’이었다.
◇“수수료 많이 내면 암호화폐 드려요”
캐셔레스트는 거래 수수료를 자체 발행 코인으로 돌려주는 채굴형 거래사이트다. 지난 21일 캐셔레스트는 자체 발행 코인 캡(CAP)의 미래 유통량을 전량 소각하는 대신 새로 개발한 하트코인(HRT)을 23일 상장하겠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거래사이트의 주 수익모델은 거래 수수료다. 22일 하루 동안 수수료를 많이 내면 낼수록 자체 발행 코인을 보너스로 주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보너스를 받으려고 덜컥 암호화폐를 샀다가 가격이 내려가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눈치 빠른 투자자들이 달려든 게 스테이블코인 ‘트루USD’였다.
트루USD 거래량의 80%가 캐셔레스트에서 나왔다 (코인마켓캡 갈무리) © 뉴스1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 혹은 실물자산에 가격이 고정비율로 연동돼 가격변동성이 낮은 암호화폐를 말한다. 특히 캐셔레스트에 상장된 트루USD는 미 달러와 1대1로 연동된다. 1트루USD 코인 가격은 1달러로 고정돼 있다는 뜻이다. 원화 가격도 1120원대에서 큰 변동이 없다.
22일 투자자들은 트루USD 코인을 대량 매집했다. 그리고 산 가격 그대로 되팔았다. 마치 수건돌리기하듯 같은 가격에 트루USD 코인 주고받기를 반복했다. 아무도 손해·이득 보는 일 없이 얌전히 수수료만 지불한 것이다.
수수료를 내고 총 60만 하트코인을 지급받은 투자자들은 23일 오후 하트코인이 채굴원가인 8200원에 상장되자마자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오후 2시30분쯤 하트코인 가격은 3만400원까지 치솟았다. 폭발적 매도세가 그치자 폭락이 시작됐다. 25일 오후 4시 현재 하트코인 가격은 3620원에 머무르고 있다. 상장 직후 하트코인 가격이 폭등할 때 매도한 투자자들은 22일 지불한 수수료 대비 큰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트루USD는 수수료와 보너스로 지급된 자체발행 코인 판매가간의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이용당한 셈이다.
트루USD는 코인마켓캡 기준 시가총액이 2억900만달러(약 2343억원)를 넘는 세계 26위 암호화폐다.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다. 바이낸스·오케이엑스 등 세계적인 거래사이트에 상장돼 있다. 그러나 23일(현지시간) 전체 거래량의 80% 이상이 한국의 중소형 거래사이트인 캐셔레스트 한 곳에서 이뤄졌다. ‘수건돌리기’가 빚은 비정상적인 거래 흐름이었다.
캐셔레스트 고위관계자는 “최근 트루USD 거래량이 갑작스럽게 늘어난 건 하트데이 이벤트 영향이 맞다고 본다”며 “아무래도 스테이블코인의 가격 안정성 때문에 투자자들이 트루USD에 몰린 것 같다”고 인정했다.
◇스테이블코인, 알고보니 ‘언스테이블’?
트루USD 운영사인 ‘트러스트토큰’의 라이언 로덴바흐 아시아태평양 총괄은 “캐셔레스트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뭐라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이런 거래는 생산적이지 않을뿐더러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수건돌리기’를 비판했다.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캐셔레스트 고위관계자는 “현재 암호화폐 거래사이트 간의 고객 유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채굴형 거래사이트에서 자체 발행 코인 지급 이벤트를 벌인다면 ‘수건돌리기’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