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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율만 높고 결정력이 없으면…” 과제만 안고 온 벤투호

입력 | 2019-01-27 17:09:00


1만 여 관중이 들어선 25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 곳곳에는 태극기가 내걸렸다. 카타르가 아랍에미리트와 단교한 상태라 카타르 응원석은 텅텅 비어있었다. 경기장을 붉게 물들인 한국 축구팬들은 이날 카타르와의 2019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이 승리하길 기도하며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러한 염원과는 달리 이날 한국은 시종 주도권을 쥐고도 골을 넣지 못했다. 공격은 단조로웠고, 수비진영 깊숙이 내려가 있다가 가끔씩 나오는 카타르의 역습에 수차례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했다. 한국 관중석에서는 득점의 환희가 아닌 탄성이 수시로 쏟아졌다. 0-1 패배.

한국이 8강에서 탈락하자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꺾었던 순간을 떠올린 축구인들이 많았다.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던 독일이 결정적인 한방이 없어 한국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당시 독일을 2-0으로 완파했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은 “점유율 축구는 골 결정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바로 역공을 당할 수 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었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카타르 경기에서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3위 한국은 93위 카타르를 상대로 점유율에선 시종 60% 이상으로 앞섰지만 ‘한방’이 없어 1960년 이후 59년 만의 정상도전을 멈춰야 했다. 지난해 8월 출범 이후 11경기 무패행진(7승 4무)을 이끌던 파울루 벤투 감독(50)은 첫 패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카타르전 패배가 한국대표팀에 다양한 과제를 남겼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대길 위원은 “점유율이 높은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점유율만 높고 결정력이 없으면 역공으로 위험에 노출될 수가 있다. 상대의 압박수비에 좁아진 공간에서 빠른 패스나 개인기로 돌파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이렇다보니 횡패스와 백패스가 이어졌고 수비에 집중하다 반격에 나선 카타르에 당한 것이다”고 말했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 벤투 감독이 활용할 공격 옵션 자체가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회 직전 벤투 감독의 신임을 받던 남태희(알두하일 SC)는 십자인대를 다쳐 낙마했고, 이재성(홀슈타인 킬)도 조별리그 1차전에서 다친 이후로 경기에 나서질 못했다. 중원의 핵인 기성용(뉴캐슬)마저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을 다쳐 대회 도중 대표팀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과감한 돌파로 공격의 활로를 뚫어주던 황희찬(함부르크 SV)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8강전에 나서질 못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이런 위기상황에서 교체 카드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하는 등 대응능력도 떨어졌다는 평가다. 다치거나 경고 누적으로 빠진 경우를 제외하면 벤투 감독은 중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부터 선발 출전 명단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바레인과의 16강전에서 수비수 김진수(전북)가 연장전에 들어가 결승골을 넣은 것이 유일하게 성공한 교체카드였다.

전술부재도 그대로 드러났다. 좌우 사이드 공격 위주의 4-2-3-1 포메이션 이외의 전술이 없었던 것이다. 카타르를 포함해 한국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들은 5명의 수비를 배치해 일단 막고 시작했다. 축구 영상·데이터 분석업체인 비주얼스포츠에 따르면 이날까지 5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국은 70.8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렇게 공을 소유하고도 골을 제대로 넣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좌우 사이드가 막히면 중앙에서 해결 해줘야 하는데 그런 선수가 없었다. 이렇다보니 황희조(감바 오사카) 등 공격수는 고립되고 패스는 옆이나 뒤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중원을 책임질 선수 발굴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구자철(아우구스부르크)과 기성용이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다. 특히 기성용은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빌드업’의 출발점으로 감각적이고 정확한 패스가 일품이다. 황인범(대전) 정우영(알 사드) 등이 기성용을 대체하기엔 아직 경기 조율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벤투 감독은 “카타르전에서 효율적이지 못한 축구를 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골을 많이 못 넣은 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기회를 창출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우리 스타일(지배하는 축구)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아부다비=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