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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서동일]어딘가 어설픈 폴란드의 베팅

입력 | 2019-01-28 03:00:00


2월 12, 13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이른바 ‘반(反)이란 국제회담’이 열린다. 주요국들이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벌써부터 성과 없는 행사로 그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바르샤바 시청 앞. AP=뉴시스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2월 12일 미국과 폴란드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공동으로 열겠다는 국제회담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까지 누가 오고 무엇을 논하는 자리인지 알 길이 없다. 폴란드 정부 웹사이트에도 ‘미래 중동의 평화·안보를 위한 각료회의’란 추상적 설명만 나와 있다.

상황이 이래서 주최국인 미국과 폴란드 고위 관료의 입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헷갈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동 평화를 위협하는 이란의 영향력을 억제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라고 했다. 폴란드 측은 “테러리즘, 극단주의, 미사일 개발, 해상무역 및 안보 등을 포괄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이 그 말 같기도 하고 다른 말 같기도 하다. 무척 애매하다는 것만 확실하다.

이번 회담에는 약 70개국이 초청됐지만 국제사회에서 입김이 센 주요 국가들은 속속 불참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와 프랑스 외교장관,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등이 대표적.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온 나라가 휘청이는 영국은 물론이고 EU의 강대국 독일도 불참 가능성이 높다. 설사 참가해도 고위급 인사가 올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이 나라들은 왜 불참할까.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는 “중동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이란 말고도 중요한 사안이 많다. 단순히 이란에만 초점을 맞춘 회의는 되레 역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중동 평화를 위한다는 회담이 오히려 평화 가능성마저 밀어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사자인 이란도 초청국 명단에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주장처럼 ‘문제아’ 이란이 중동 평화를 해친다면 이란의 개입 없이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싫든 좋든 이란을 초청하려는 시도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또 이란을 배제하고 찾은 해결책을 이란이 순순히 받아들일까. 물음표가 많지만 미국과 폴란드 모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유명한 미국과 이란 사이는 새로울 것 없다지만 폴란드가 왜 반(反)이란 전선에 가담했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폴란드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바르샤바 국제회담 소식이 나온 뒤 일각에서는 ‘가짜뉴스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폴란드는 미국의 우방이지만 이란과도 우호적 관계를 맺어왔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 시절 서방이 대이란 경제 제재를 잠시 풀었을 때 이란 외교장관이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찾은 나라도 폴란드였다.

당연히 폴란드와 이란 관계는 차갑게 식었다. 회담 개최 소식이 알려진 뒤 이란 외교부는 “보복 방안을 찾겠다”며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폴란드 주재 이란대사관은 비자 발급 업무를 중단했다. 이란에서 열릴 예정이던 폴란드 영화제도 취소됐다.

반이란 성향이 짙은 국제회담 개최를 강행한 폴란드의 속내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폴란드의 국제적 위상과 지위를 높이겠다는 야망과 둘째, 미국과 더 밀착해 러시아와 맞서겠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폴란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에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2016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동유럽 강자’ 입지를 다지겠다는 의사를 굳혔다. 여세를 몰아 이번 회담 개최로 중동을 포함한 국제사회 현안에 더 깊이 개입하겠다는 욕심을 내보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폴란드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러시아의 수많은 압박과 위협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이에 지난해 폴란드는 미국에 “자국 내 미군기지 건설 및 영구 주둔을 약속하면 최대 20억 달러(약 2조1500억 원)를 내겠다”고도 했다. 폴란드 국방부는 미군기지, 교통·통신 인프라 및 편의시설 지원 방안을 담은 39쪽짜리 문서도 공개했다.

폴란드가 이번 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미국, 유럽, 중동 주요국을 하나로 묶는다면 폴란드 외교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실속’은 없고 이란과 러시아와 ‘척’만 지는 행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패한 움직임에 미국이 비용을 지불할 리도 만무하다. 폴란드의 ‘헛발질’이 안타까운 이유다.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dong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