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 소초성당 김태원 신부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다며 후드티의 모자를 쓴 천주교 원주교구 김태원 신부의 모습이 수도원 수사처럼 보인다. 왼쪽 조형물은 가시면 류관을 쓴 예수를 형상화한 장동호 작가의 ‘십자가’, 앞의 그림은 김 신부의 양면화 ‘전쟁과 평화’. 원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25일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작은 길로 접어들자 정겨운 시골 초등학교가 나온다. 고개를 돌린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하얀색 단층의 작고 예쁜 성당이 보였다. 강원 원주시 소초면에 위치한 이 성당은 입구에는 성모자상, 좌우에는 예수의 가시면류관과 끌려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 서 있다. 성당 내부는 신자 100명이 들어서면 꽉 찰 정도다. “성당이 작아서 아름답고 더 좋다”는 김태원 신부(67)와 소초성당은 사연이 있다. 이 성당은 그가 사제의 길로 이끈 ‘아들 신부’인 김찬진 신부가 2003년 초대 신부를 맡은 곳이다. 이제 아버지 신부가 이곳에서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묘한 인연이다.
“성당 건립 때 돈이 부족해 조립식으로 만들었다는데, 신자들이 좋아한다. 돈 들여 고칠 생각은 없다.”
“젊은 시절 용소막 성당에 있을 때 아버지와도 잘 아는 중학생이 있었다. ‘너, 나중에 신부가 돼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가톨릭에서는 이런 관계를 ‘아들 신부’ ‘아버지 신부’라고 부른다. 이런 인연도 있고 작은 성당에서 건강도 챙겨야 해서 2년 전 이곳으로 왔다. 아들 신부도 멀지 않은 수도원에 있다.”
김 신부는 평생 사제와 화가의 길을 같이 걸어왔다. 1978년 프랑스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파리국립미술학교를 다녔다. 여러 차례 개인전 이후 옻칠 작업을 한 작품에 몰두해왔다. 그는 11월 서울 강남구 한 갤러리에서 가는 면실을 꼬아 그림판을 만든 뒤 옻칠 작업을 한 ‘만남’, 옻 작업 뒤 금가루를 입힌 ‘비상’ 등 120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옻칠 작업을 하면 작품이 1000년 이상 유지되고, 질감도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냄새가 심하고 시간이 많이 들지만 한번 빠지면 그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액 장학생으로 프랑스 유학을 보내준 분이 김 추기경님이다. 가끔 파리에 오시면 유학생들과 영화나 전시를 보고, 맥주도 한잔 사주셨다. 그러면서 ‘내가 서울에 있으면 이것도 못 해’라며 웃으시던 모습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유학생들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두 길이 모두 너무 재미있는데, 어떻게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겠나(웃음).”
원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