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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화가 두 길… 너무 재미있어 어느 것도 포기 못해”

입력 | 2019-01-28 03:00:00

원주교구 소초성당 김태원 신부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다며 후드티의 모자를 쓴 천주교 원주교구 김태원 신부의 모습이 수도원 수사처럼 보인다. 왼쪽 조형물은 가시면 류관을 쓴 예수를 형상화한 장동호 작가의 ‘십자가’, 앞의 그림은 김 신부의 양면화 ‘전쟁과 평화’. 원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25일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작은 길로 접어들자 정겨운 시골 초등학교가 나온다. 고개를 돌린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하얀색 단층의 작고 예쁜 성당이 보였다. 강원 원주시 소초면에 위치한 이 성당은 입구에는 성모자상, 좌우에는 예수의 가시면류관과 끌려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 서 있다. 성당 내부는 신자 100명이 들어서면 꽉 찰 정도다. “성당이 작아서 아름답고 더 좋다”는 김태원 신부(67)와 소초성당은 사연이 있다. 이 성당은 그가 사제의 길로 이끈 ‘아들 신부’인 김찬진 신부가 2003년 초대 신부를 맡은 곳이다. 이제 아버지 신부가 이곳에서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묘한 인연이다.


―성당이 그림처럼 예쁘다.

“성당 건립 때 돈이 부족해 조립식으로 만들었다는데, 신자들이 좋아한다. 돈 들여 고칠 생각은 없다.”


―아들 신부와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젊은 시절 용소막 성당에 있을 때 아버지와도 잘 아는 중학생이 있었다. ‘너, 나중에 신부가 돼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가톨릭에서는 이런 관계를 ‘아들 신부’ ‘아버지 신부’라고 부른다. 이런 인연도 있고 작은 성당에서 건강도 챙겨야 해서 2년 전 이곳으로 왔다. 아들 신부도 멀지 않은 수도원에 있다.”


―입구 양쪽의 조형물이 독특하다.

“성당 건립 당시 설치한 작품이다. 저녁에 성당 불빛이 가시면류관에 비치면 환상적이다. 입구로 옮겨 놨더니 분위기가 산다. 작품이 좋아 작가를 찾았는데 부인이 전화를 받았다. 남편 장동호 작가는 2007년 작고했다고 하더라. 재능 있는 작가라 안타까웠다.”

김 신부는 평생 사제와 화가의 길을 같이 걸어왔다. 1978년 프랑스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파리국립미술학교를 다녔다. 여러 차례 개인전 이후 옻칠 작업을 한 작품에 몰두해왔다. 그는 11월 서울 강남구 한 갤러리에서 가는 면실을 꼬아 그림판을 만든 뒤 옻칠 작업을 한 ‘만남’, 옻 작업 뒤 금가루를 입힌 ‘비상’ 등 120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적지 않은 시간과 공이 들어간 작품이 많다.

“옻칠 작업을 하면 작품이 1000년 이상 유지되고, 질감도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냄새가 심하고 시간이 많이 들지만 한번 빠지면 그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음 달 16일 선종(善終) 10주기를 맞는 김수환 추기경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전액 장학생으로 프랑스 유학을 보내준 분이 김 추기경님이다. 가끔 파리에 오시면 유학생들과 영화나 전시를 보고, 맥주도 한잔 사주셨다. 그러면서 ‘내가 서울에 있으면 이것도 못 해’라며 웃으시던 모습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유학생들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사제와 전업화가의 갈림길에서 고민한 적은 없나.

“두 길이 모두 너무 재미있는데, 어떻게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겠나(웃음).”


―우문(愚問)이 됐다.

“주변의 동기 신부들 보니까, 노는 것 같아도 다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잘 준비하고 있더라. 그림 그리다 죽을 생각이다. 사제로서야 곧 은퇴하겠지만, 버리고 절제하는 신앙의 삶도 마지막까지 바뀔 게 없다.”
 
원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