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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한번, 가장 의미있는 날 8·15에”… 4代제사 몰아지내는 독립운동 가문

입력 | 2019-01-28 03:00:00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 2019]유림 명문 안동 임청각 종가
“공자 맹자는 독립후에 찾자”, 석주 이상룡 선생의 뜻 이어




22일 경북 안동시 임청각 사당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오른쪽 사진)의 현손인 이창수 씨가 설 차례와 제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안동=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8월 15일 오전 11시. 광복절에 부모님부터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4대의 기일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는 집이 있다. 신문지 크기의 작은 상 4개를 모아놓고 과일 4개와 포, 국 등을 올리는 게 전부다. 그래도 조상을 기리고 존경하는 마음은 그 어느 집보다도 크고 깊다. 바로 유림 명문가이자 10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경북 안동시 고성 이씨 임청각(臨淸閣·보물 제182호)파 종가의 이야기다.

임청각 종가를 대표하는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은 구한말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99칸짜리 사대부 반가(班家)의 종손이었다. 이 집안은 조선 후기 한때 노비가 408명이나 됐을 정도의 대부호였다. 석주는 일제에 나라를 뺏긴 이듬해인 1911년,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떠난다. 독립운동에 투신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냈다.

“400년간 이어져 온 가문의 재산을 모두 털어 서간도에서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짓고, 독립군을 육성하셨죠. 고조할아버지(석주)가 고향을 떠나시며 조상의 신주를 땅에 묻으셨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공자와 맹자는 독립 후에 찾자’고 하셨다고 해요.” 22일 안동에서 만난 석주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 이창수 씨(54)가 말했다.

1년 내내 제사가 끊이지 않던 이 집안에서 1994년 새로운 전통이 생겼다. 당시 집안의 큰 어른이던 작은아버지가 “우리 집안의 전통은 제사가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년 중 가장 의미 있는 날에 4대조까지 모든 제사를 모아 지내자”고 제안한 것이다. 만장일치로 광복절이 뽑혔고 매년 8월 15일이면 제사를 지낸다.

임청각 종가는 설 차례상도 간소하다. 이 씨는 “1744년 쓰인 집안의 제사 매뉴얼에는 후손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려는 내용이 강조돼 있다”며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전은 사서 올린다”고 말했다.

이 집안에서는 석주와 그의 동생, 아들, 손자, 손자며느리까지 총 10명의 독립유공자가 배출됐다. 이들의 독립운동 기간을 합치면 300년이 넘는다.

안동=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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