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재원(38)은 ‘살인미소’라는 수식어를 벗는 데 꼬박 18년이 걸렸다. 그래도 다 벗지는 못했다.
OCN 드라마 ‘신의 퀴즈: 리부트’(신의 퀴즈 시즌5)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브레인 또라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레인은 아니”라면서도 “캐릭터를 연구한 성과 같아서 기분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재원이 연기한 ‘현상필’은 홍콩 구룡 최대 조폭 조직의 넘버2다. 법의관 사무소 촉탁의 ‘한진우’(류덕환)를 장애물처럼 여겼다.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에 화려한 문신, 살기 가득한 눈빛까지…. 김재원의 선한 이미지가 익숙한 대중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캐릭터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팬들까지 의식하면 혼동이 생겨 캐릭터 중심을 못 잡을 것 같았다”면서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시즌 1~4까지 집필한 박재범 작가는 이번에 크리에이터로만 참여했다. 시즌5는 강은선, 김선희 작가가 썼다. 중간에 또 작가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악역이라도 이유가 타당해야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는데, ‘도대체 왜 죽이는 걸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느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내용이 계속 바뀌어 ‘대체 무슨 캐릭터일까?’ 생각했다. ‘비하인드가 있냐?’고 물으면 감독님도 ‘모른다’며 ‘때로는 모르고 연기하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고 했다. 끝날 때까지 이유를 몰랐다”고 씁쓸해했다.
종방 2주 후 만난 김재원은 아직도 ‘상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했다. 정신·육체적으로 많이 망가져 “만신창이가 됐다”며 웃었다. ‘신의 퀴즈5’ 출연을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했다. 이제 “욕먹는 건 두렵지가 않다”며 “왠지 욕먹으면 힘이 생긴다. 변태가 된 느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데뷔 20년 차가 다 됐지만, 아직도 연기자로서 한참 배워가고 있다. 처음 장르물에 도전해 악역을 맡았는데 대중들과 너무 동 떨어지지 않고 호흡할 수 있었다. ‘김재원이 선한 역할만 하는 게 아니구나’, ‘이런 연기를 한다고? 한 번 볼까?’하는 고리만 생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욕심을 크게 부리지 않았다. 새로운 역할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이 열려서 만족한다.”
김재원은 ‘상필’을 연기하며 공황장애로 힘들었다. 전작 SBS TV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촬영 때도 공황장애로 다른 연기자들과 대화도 나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상필’이라는 어려운 역을 택한 데는 “두려움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서”다. 오히려 “공황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공황장애를 다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고 버티는 힘을 배웠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순수한 미소는 여전하다. 전성기가 그립지는 않을까. “신인 때는 의도한 게 하나도 없었다. ‘살인미소’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환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내가 ‘연기자를 한다고?’ ‘주인공을 시켜주네?’ 싶더라. 최선을 다하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느 순간 주변에서 내 모습이 아닌 다른 것을 강요하더라. 지금은 불필요한 상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조금씩 걷어내고 싶다. 예전처럼 맑은 미소는 안 나오겠지만 하하.”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