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인테리어 업체 벽에 걸린 1월 달력. 부동산 거래 실종으로 인테리어 수요도 줄면서 스케줄표가 텅 비어 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서울 강남구에서 30년 동안 포장이사 업체를 운영해 온 이현실 씨(63)는 “요즘 (계약건수가) 아주 바닥이다. 직장을 그만 두고 이삿짐 사업을 해 온 이래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에 따르면 보통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인 1~3월은 송파구, 강남구, 경기 분당신도시 지역에서 평소의 3배 가격을 주고서라도 ‘제발 이사를 맡아 달라’는 전화가 불티나게 걸려온다. 경기가 좋을 땐 20~25건까지도 거래가 있다. 하지만 올해 1월엔 6건이 전부였다. 다음달 예약은 단 한 건도 잡혀있지 않은 상태다. 이 씨는 “가진 사람들이 움직여 줘야 돈이 돌아 우리 같은 사람들도 먹고 사는데, 다들 버티고만 있으니 앞으로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들어 28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건수는 1432건에 그쳤다. 지난해 1월 거래건수(1만198건)와 비교하면 1년 만에 86.0%(8766건)나 줄어든 것이다. 같은 기간 전세거래는 거의 비슷했지만 매매거래 하락폭이 유독 컸다.
부동산 거래 절벽의 영향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I인테리어 업체 벽에 걸린 1월 달력의 스케줄표는 텅 비어 있었다. 이 업체는 도곡동과 역삼동 대단지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어 겨울철이면 한 달에 네다섯 건 이사 도배 의뢰가 들어오는 것이 보통이다. 업체 대표 A 씨(60)는 “무상 AS서비스를 해달라는 이전 고객들의 문의 전화만 간혹 올 뿐”이라며 “경기가 좋고 배가 불러야 생각나는 게 인테리어다 보니 이 업계가 정부정책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 소재 H이삿짐센터 관계자도 “지난해 말부터 매출이 20% 정도 줄었다”며 “작은 규모의 용달차를 돌려서 버티는 정도지, 큰 이사 건은 거의 없다”고 했다.
거래가 줄면서 중개업소 폐업도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폐업한 공인중개업소는 전국 1808곳, 서울의 경우 438곳에 이른다. 부동산 경기가 극도로 부진했던 2013년 당시 전국 폐업 공인중개사 수(1765명)를 넘어선 수치다. 거래 실종의 부작용은 이 밖에도 건설사, 건설 연관 업종, 영세자영업 등 밑바닥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당장 지자체 재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취득세와 등록면허세 등은 지자체 재정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7년 지방세 80조4091억 원 가운데 부동산 거래세에 해당하는 취득세(23조4866억8500만 원)의 29.2%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한 조치는 필요하지만 얼어붙은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공시가격 상승으로 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오른 만큼 거래와 관련된 세금은 낮춰줘야 거래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