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 2019]<2> 모바일 명절인사 에티켓 호칭도 없이 메시지 복사해 붙이고 서로 모르는 사람 단톡방 초대 당황 이름만 불러도 친근한 느낌 생겨… 이번 설엔 정성 담긴 감동 문자를
회사원 박용진(가명·30) 씨는 지난해 설 연휴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알 수 없는 수십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찬 카톡방에 갑자기 초대된 것이다. 초대자는 고모였다. 고모는 “새해에는 모두들 건강하시고 은혜가 가득하시길 기도한다”고 말했지만 답을 남기는 이는 한둘에 불과했다. 대부분 말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박 씨는 “나중에 고모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니 ‘새해 인사를 하고픈 사람이 많은데 하나하나 쓰기엔 손이 느려서 그랬다’고 하시더라”며 “초대하기 기능을 배워서 잘 활용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우리 사회의 새해 인사는 어느덧 모바일이 중심이 돼가고 있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식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사람마다 다르다 보니 때로 모바일 새해 인사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한다.
김은정 씨(30·여)는 ‘명절 때만’ 연락하는 대학 동기가 불편하다. 얼굴 안 본 지 어언 3년인데 설날, 추석이면 어김없이 ‘새해 복 많이’ ‘즐거운 한가위’ 같은 ‘복붙(복사해 붙인 듯한)’ 문자가 온다. 김 씨는 “‘은정아’ 같은 다정한 부름은 없이 철마다 같은 메시지가 오니 이젠 뭐라고 답할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고 말했다.
새해 인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의 대표적 세시풍속이다. 조선시대 중류 이상 가정의 부인들은 ‘문안비(問安婢)’라고 하는 여종을 시켜 사돈 등 일가친척을 찾아뵙고 안부를 물었다. 남성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관원이나 상관의 집에 보냈다. 일본에서 연하장 문화가 들어온 뒤로는 손 글씨 연하장이 유행하기도 했다.
모바일의 편리함과 새해 연하장의 의미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설 인사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같은 말이라도 이름을 넣어서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대상 없는 메시지 대신 ‘○○아’라고 한마디만 앞세워도 그 메시지에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모바일 기술을 활용해 자기만의 ‘정성’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이윤상 씨(27)는 올해 1월 1일, 90세가 되신 할아버지로부터 영상편지를 받고 감동을 받았다. 이 씨는 여행을 갈 때마다 할아버지에게 영상을 보내드리곤 했다. 할아버지가 이를 보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영상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 씨는 “어색한 영상이었지만 할아버지 마음이 전달돼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사람들은 의미 없이 예쁜 이미지보다 단조로운 텍스트라도 의미가 담긴 것에 마음이 끌린다”며 “받는 이의 이름, 그 사람과의 추억 등 인사를 ‘개인화’할 수 있는 요소가 들어갈 때 감동이 커진다”고 말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주애진 기자
● 당신이 제안하는 이 시대의 ‘신예기’는 무엇인가요. newmann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