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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의 전쟁史]〈43〉마키아벨리의 패전

입력 | 2019-01-29 03:00:00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20세기까지도 논란이 된 책이다. 군주론이 획기적인 통치술을 제시한 책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윌 듀랜트(1885∼1981)는 당시에 이미 마키아벨리보다 더 마키아벨리즘을 잘 구현하는 리더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말했다. 역사를 뒤져봐도 ‘사자의 심장과 여우의 지혜’를 갖춘 리더는 많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의 망토 뒤에 숨어 있던 통치의 본성을 양지로 끌어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은 모두를 불편하게 했지만, 어쩌면 통치술의 민낯을 공론의 장에 내놓은 덕에 역설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 정의로운 수단에 대한 고민을 촉진시켰다고 할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게 마키아벨리가 공헌한 부분이 또 하나 있다. 대중을 선동하는 교묘한 논법이다. 그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까밝히는 솔직하고 양심적인 지성인인 척, 진지한 사색가인 척, 역사와 실무경험을 겸비한 인재인 척하면서 자기 논리를 설파한다. 그러면서 불리한 증거는 감추고, 뒤틀고, 무시한다. 논리가 달리면 감성에 호소한다.

용병 전쟁이 판을 치던 시기, 그는 피렌체에 유럽 최초의 개병제(모든 국민이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돈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싸우는 시민군이 더 강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스페인 군대가 침공하자 시민군은 허망하게 도망쳤다. 올바른 시도도 실패할 수 있다. 결과만으로 판단하지는 말자. 그러나 전술론에서 그가 내세운 논리는 마키아벨리식 견강부회의 전형이었다. 로마군을 이용해 시민군을 옹호하다 보니 장교와 전문군인의 역할을 축소했다. 로마군의 숨은 비결이 전문성인데 말이다. 첨단 진보적인 인물인 척하면서 전장의 여왕이 될 대포의 가능성은 축소했다. 심지어 16세기 용병의 대표인 스위스 용병은 시민군으로 분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시민군 아닌 군대가 없다.

마키아벨리식 논법에 지식인들도 곧잘 넘어간다. 더 뛰어난 지식인은 그의 방법을 사용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이래저래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선각자였다.
 
임용한 역사학자